실개천(細溪院)/2011年 細溪院

울산신문 10월 13일 기사

백산(百山) 2011. 10. 20. 06:33

재산가치보다 삶의 가치 우선한 '웰빙마을'
[울산의 재발견] 화봉동 단독주택
2011년 10월 13일 (목) 23:39:09 김은혜 ryusori3@ulsanpress.net
   

▲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무룡산 아래에 위치한 화봉2지구에 웰빙주택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 텃밭 가꾸고 정원을 꾸미다

건물들로 밀집된 북구 화봉동 울산컴퓨터과학고를 지나면 극과극의 풍경이 펼쳐진다.
 여유로이 간격을 두고 자리 잡은 단독주택이 곳곳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모양도 다양하다. 빨간 벽돌로 만든 집, 나무로 만든 집, 철근 콘크리트 집 등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쉽게 말해 '예쁜' 집이 눈길을 사로 잡으며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풍경에 기자는 차를 주차해두고 천천히 걸으며

집 구경을 하기로 했다. 마침 낮은 담벼락 너머로 고추를 말리고 있는 한 어머니가 보인다.

 까치발을 들고 '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한마디 건냈더니,

"우리 집은 특별히 보여줄 게 없는데"하며 흔쾌히 대문을 열어주셨다.
 지난해 6월 복층주택으로 이사를 온 하미선(52) 씨. 이전에도 단독주택에서 살아왔지만

지어진 지 30년도 넘은 낙후된 주택이라 그 집에서는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하 씨가 이 곳에 살며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텃밭'을 가꿀 때다.

이전에는 꿈꾸지도 못했지만 넓은 마당이 생겨 쪽파, 고추, 상추 등을 직접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같이 햇살이 뜨거운 날은 고추 말리기에 제격인 날이에요.

비록 이런 날 바깥에서 일하다보면 정말 더워서 땀도 주르륵 흐르지만,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마른 고추를 보고 있으면 힘든 것도 다 잊어버려요.

러면서 '아~ 이 기쁨이 진정한 전원생활을 하는 거구나'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 씨는 코너를 돌아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옹기'로 잘 꾸며놓은 집이 있다며

또 다른 주택을 소개 해 줬다.
 
#내 가족의 생활스타일에 맞추다

뒷마당으로 실개천이 조르르 흘러 '실개천 집'으로 지었다는 김형래(53) 씨의 집은

이사 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화봉2지구에 들어선 주택 중 가장 유명한 집이다.
 '옹기'로 가득 찬 김 씨의 집에 들어서니 마치 '도예 갤러리'에 관람을 하러 온 듯하다.

그만큼 각양각색의 옹기들과 도예그릇이 김 씨의 집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베란다로 나가면 또 다른 진풍경이 펼쳐진다.

 김 씨 부부가 가꾼 텃밭은 물론이고, 화분 대신 옹기에 심은 분재들

그리고 김 씨가 직접 파낸 작은 연못이 뒷마당에 흐르는 실개천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레옥잠과 개구리밥으로 가득찬 연못 덕분에 김 씨의 베란다는 온통 초록빛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집이 김 씨네 가족에게 안성맞춤인 것은

'가족의 상황'을 배려한 설계구조 때문이다.

또 방문은 거슬리는 문지방을 없애고 슬라이드 형식으로 제작했다.

덕분에 문지방에 엄지발가락을 부딪혀 '찌릿' 아픔을 느끼는 그런 불운도 겪지 않아도 된다.
 김 씨는 이 집을 설계하고 시공한 박준구 씨의 세심함과 꼼꼼함에 놀랐고 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준구 씨와의 인연은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주택을 지으면서 맺게 됐어요.

아파트 생활에 적응 돼 있던 저희 가족에게 있어 준구 씨가 만든 집은 '새로운 발견'을 한 듯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주택을 다시 지을 때도 준구 씨에게 부탁했어요.

공사 기간 동안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문제가 생긴 적도 있었는데,

저희는 괜찮다고 했지만 준구 씨가 끝까지 세심하게 다시 시공해

결국엔 이렇게 완벽한 집에서 살게 됐어요.

언제나 멋진 집을 만들어 준 준구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공간을 설계하다

김형래 씨의 집을 디자인 한 건축가 박준구(42) 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집을  부동산으로의 재산가치가 아닌 '삶의 공간'자체로 가치를 두는 것이다.
 신축을 계획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두기 마련이다.

주택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더욱 나은 조건의 집에서 살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씨의 의견은 다르다.

주변에게 너무 기대다 보면 정작 본인 몸에 맞는 '개성있는 주택'에서 살지 못한다고.

 "많은 분들이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들 하시는데,

그러다보면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단독주택'인데 나에게 꼭 맞는 주택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또 저희는 충분한 설계기간을 요구하는데, 시공기간보다 더 중요한 과정은 설계 작업 자체인

디자인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와 자주 만나며 건축주와 디자이너의

교감을 쌓으며 설계 작업을 합니다"

 개성 있는 집을 원하는 건축주들이지만 그들에게도 공통된 관심사는 있다. 바로 '마당'이다.
 땅을 밟고, 정원을 꾸미고, 조그마한 텃밭을 조성해 직접 수확해 먹는 즐거움이

사람들이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이유다.

작은 정원에 나무 몇 그루만 심어도 벌이며 새가 금방 날아들어

계절변화와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한몫 한다.
 웰빙이 대세인 만큼 많이들 주문하는 것은 '친환경'. 건축주들은 마감자재에서부터

냉·난방, 단열문제 등 가능하면 천연재료를 많이 활용하는 쪽으로 협의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친환경 자재들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박 씨는 말했다.
 
#담벼락 허무니 이웃간의 정이 새롭다

화봉2지구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담을 허물고 산다. 그만큼 이웃 간의 정이 돈독하다.
 기자는 취재차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놀라기도 했다.

분명히 초인종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한 사람이 자연스레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허물없는 사이의 주민들 덕분에 기자는 보다 수월하게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얼굴 한 번 본적이 없는 사람이 집을 찾아가 구경하겠다고 하면

어느 누가 흔쾌히 허락해 줄 것인가. 하지만 화봉2지구 주민들은 달랐다.

오히려 이 집이 예쁘고, 저 집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다며 이집 저집 소개를 해줬다.

 두 딸을 출가시키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금현교(58) 씨는 1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 이웃들과 많이 왕래를 하며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일단 집도 넓고 마당에 작은 정원도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문을 닫아놓고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여기 주민들은 다들 문을 열어두고 삽니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집에 들어가 안부를 묻고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해요.

아파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사람 사는 맛'을 여기에서 살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노후를 이 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앞으로의 날들이 너무 기대되요"

 '잘 먹고 잘 살기'위해 단독주택을 선택한 이 곳 주민들은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집에서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가며

 'Well-being'. 아주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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