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정하 -
창가 사이로 촉촉한 얼굴을 내비치는 햇살같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려 주며
이마에 입 맞춤하는
이른 아침같은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모카 향기 가득한 커피잔에
살포시 녹아 가는 설탕같이 부드러운 미소로
하루 시작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분히 흩어지는 벚꽃들 사이로
내 귓가를 간지럽히며 스쳐 가는 봄바람같이
마음 가득 설레이는 자취로
나를 안아 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메마른 포도 밭에 떨어지는 봄비 같은 간절함으로
내 기도 속에 떨구어지는 눈물 속에
숨겨진 사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영원히 사랑으로 남을
어제와 오늘...
아니 내가 알 수 없는 내일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 이 정하 -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게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기대어
울 수 있는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싶다 보고싶다 말로 다 못 할만큼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기대어
울 수 있는 더욱 필요한 것임을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 줄 사람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 줄 사람
□ 끝끝내 - 이 정하 -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무더기로 핀
흰 사리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아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 내가 웃잖아요 - 이 정하 -
그대가 지금 뒷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것을 믿기에
나는 괜찮을 수 있지요.
그대가 마시다가
남겨 둔 차 한잔
따스한 온기로 남아 있듯이
그대 또한 떠나 봤자 마음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을 수 있지요.
가세요 그대, 내가 웃잖아요.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 부끄러운 사랑 - 이 정하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닐 듯 싶은데
난 그 때마다 심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나에게는 머언 나라의 종소리처럼 느껴집니다.
.......
사랑이라는 말은
생각할수록 부끄럽습니다.
숲속 길을 둘이 걷고
조용한 찻집 한 귀퉁이에 마주 앉아
귀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주어도
채울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아직 난 잘 모르고 있으므로
내게 아픈 막니를 두고 떠나간 그 여자처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기댈 수 있게
한쪽 어깨를 비워 둘 뿐입니다.
□ 내가 왜 몰랐던가 - 이 정하 -
당신이 다가와 터뜨려 주기 전까지는
꽃잎 하나도 열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이 가져가기 전까지는
내게 있던 건 사랑이 아니니
내 안에 있어서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니
아아 왜 몰랐던가,
당신이 와서야 비로소 만개할 수 있는 것.
주지 못해 고통스러운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 이별노래 - 이 정하 -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 그 저녁바다 - 이 정하 -
아는지요?
석양이 훌쩍 뒷 모습을 보이고
그대가 살며시 손을 잡혀 왔을 때,
조그만 범선이라도 타고 끝없이 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당신이 있었기에 평범한 모든 것도
빛나 보였던 그 저녁바다
저물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
석양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요?
발길을 돌려야 하는 우리 사랑이
우리가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와야 하는 그것이
내 가장 참담한 절망이었다는 것을.
저무는 해는 다시 떠오르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다시 그 곳을 찾게 될 날이 있을까.
서로의 아름을 딛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영원히 영원히
당신의 가슴에 저무는 한점 섬이고 싶었던
내 마음, 그 저녁바다를
□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 이 정하 -
눈을 뜨면
문득 한숨이 나오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
불도 켜지 않은 구석진 방에서
혼자 상심을 삭이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정작 그런 날
함께 있고 싶은 그대였지만
그대들 지우다 지우다
끝내 고개를 떨구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지금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사랑한다, 사랑한다며
내 한몸
산산이 부서지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할 일은 산같이 쌓여 있는데도
하루종일 그대 생각에 잠겨
단 한 발짝도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소유가 된다 하더라도
결코 그대 하나가진 것만 못한데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더 이상 줄 것이 없습니다.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해지는 이 그리움 밖에는.
그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도 주지 못한 것 같아
그게 더욱 안타깝습니다.
아아, 내게 남은 건 없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텅 빈 극장 관람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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