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近現代 한글 詩

매화 앞에서 - 이 해인 -

백산(百山) 2013. 2. 11. 02:08

 

 

 

□ 매화 앞에서 - 이 해인 -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에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 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 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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