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글들/모셔온 글

기묘사화, 중종 과 조광조의 다른 길

백산(百山) 2010. 11. 18. 01:08

< 기묘사화, 중종 과 조광조의 다른 길 > 

                                                                                                    현모 실장  한국학중앙연구원

 

Ⅰ. ‘4년의 개혁정치’가 끝장나는 날 

1519년 11월 15일, 기묘사화에 관한 실록기록

"강릉의 날씨가 따뜻하여 동백꽃이 피었다.

 삼엄한 경비 속에 경복궁으로 조정 신료들이 심야에 속속들이 들어왔고

 중종은 조광조 등을 모두 의금부에 투옥하라고 명령했다."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변덕스러운 것.

 

Ⅱ. 곤혹스런 중종의 언행 

"여론을 들끓게 했다고 죄(罪)주는 것은 옳지 않다" - 이조판서 신 상 -

"조정에서 의논한 것이니… 해야 한다" - 중종 -

 하지만 누구도 의논한 적이 없었다!

"왕께서 뽑아 임명하셨으며, 다 들어주셨는데

 전하께서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꼴입니다" - 영의정 정 광필 -

 

Ⅲ. 궁지에 몰리는 왕 

"조정이 요청했다. 사사(賜死)시키지 않을 수 없다" -중종-

"왜 이 중대한 일을 밤에 몰래 합니까?" - 기사관 권 예 -

"청한 게 누굽니까? 나라가 어지럽던 연산군 때가 연상됩니다." - 승지 유 은필 -

 

Ⅳ. 급조된 알리바이? 

사건발생 4일 후 중종,

"홍 경주, 남 곤, 김 전 등 무사 30여 명이 문신들만 중용하려는

 조광조 등을 죽이려 했고…

 무신 쿠데타를 막기 위해서 조광조 등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주는 "내가 청했다"며 거들었다.

 

Ⅴ. 애매한 상황의 급 반전 

기묘사화, 중종은 갈팡질팡 했으며 조광조 등은 자포자기했다.

중종은 조광조를 가벼운 벌로 견제할 수 있었고 오히려

 경주를 처벌해서 보다 강한 개혁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종은 조광조를 처형하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말았다.

 

Ⅵ. 나는 헤겔을 떠올렸다. 

"감성이 정(正)의 단계에서 반(反)의 단계로 한껏 끌고 가야만 온전한 합(合)이 이뤄진다.

그런데 '반'의 단계로 역사가 갈 때 올바른 방향으로 착각해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다 쏟아 놓는다."

 광조의 '정치적 실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중종 역시 자신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후 유교 지식인들은 극단적인 개혁 정치의 위험성을 깨닫고 신중해지게 되었다.

 

Ⅶ. 피해자 조 광조派의 입장 

"조 광조 일파가 당파를 결성했다." - 공조판서 김 전 -

 광조의 '붕당 결성죄(反국가단체 결성죄)'

"신의 나이 이제 서른 두 살… 공론을 가지고 서로 시비하였을 뿐이요,

 당파를 맺어 국론을 전도 시킨 것은 뜻과 다릅니다." - 기묘 제현의 한 사람, 김 구 -

 

Ⅷ. 젊은 그들의 변(辯) 

"논의가 궤격(詭激) 했는지 모르겠지만 결코 사사롭게 부화뇌동한 일은 없었다."

"요순의 정치를 위해 뛰었을 뿐이다."

 구(32세), 김 식(39세), 조 광조(38세), 박 훈(36세), 김 정(34세),

 자임(32세), 박 세희(29세)…

'젊은 혈기에 좋은 뜻으로 개혁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Ⅸ. 가해자 중종의 입장 

기묘사화 발생 1년 전, 압록강 침략

"몰래 군사를 내어 엄습해서 포획하자."

"밭가는 일은 종에게, 베 짜는 일은 여종에게,

 이 일은 신의 말을 들으시오!" - 병조판서 유 담년 -

"불의에 엄습하여 사로잡는다면 의리에 어긋난다." - 조광조 -

성군 세종도 첩보부대를 운영한 마당에 모든 것을 인의로 판단했던

 광조는 '오활(迂闊)했다'

 

Ⅹ. 율곡 이 이가 기록한 기묘사화 

경연일기 中 조 광조가 유배 길에 이 사균(홍문관 부제학)을 만나는 장면.

"자네는 '중용'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어떻게 요순의 정치를 하려 했는가.

 어리석으면서 자기를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미천하면서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며,

 지금 이 세상에 나서 예전의 도를 행하다니!"

현실을 파악 못하고 이상만 추구했고 국왕에게 중용을 공부하라 하면서

정작 자신도 그것을 몰랐다.

 

ⅩⅠ. 조 광조 리더십의 명암 

 광조는 샛별과 같다.

"찬연히 빛나다가 4년 만에 스러진 샛별…

샛별은 미의 여신 Venus인 동시에 하늘에서 떨어진 오만한 Lucifer라는 사실."

기대와 지지를 받고 성과를 거두는 지도자와

오만과 독선으로 고립되고 좌절하는 지도자…

그것은 '중용'의 실천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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