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림선사(道林禪師) 와 백 낙천(白 樂天)
중국 당(唐)나라의 사대 문장가 중의 한 분인 백낙천이
항저우(杭州) 자사(刺史:검찰관)로 부임하였는데 모두들 신임 인사차 찾아 왔건만
유독 도림 선사만이 그를 찾지 않았다.
백 낙천은 불쾌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그의 내공을 시험하고도 싶어서
그리 멀지 않은 사찰에 도림(道林)선사가
주석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한번 직접 시험해 보리라' 작정하여
절강성 소흥현 진망산으로 스님을 찾아서 수행원을 거느리고 나섰다.
선사는 도를 깨우치기 위해 60년을 나무 위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새둥지 같다고 하여
조과화상(鳥窠和尙), 작소선사(鵲巢禪師)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 날도 스님은 진망산의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일산같이 생긴 나무
낙락장송에 올라 수행 중에 계시면서
그가 오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백 낙천이 나무 위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선사께서 계신 곳이 몹시 위험합니다.”
“땅 위에 있는 태수의 위험은 더욱 심하오.”
‘나는 벼슬이 자사에 올라 강산을 진압하고,
또 이렇게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무엇이 위험하단 말이요?’
그의 자만심을 이미 꿰뚫어 본 선사가
“티끌 같은 세상의 지식으로 교만심만 늘고
번뇌와 탐욕이 쉬지 않으니,
장작과 불이 서로 사귀는 것과 같이
망상과 망상이 끊어지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소?”
"당신의 마음은
마치 나무 섶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한 생각 나고 한 생각 꺼지는 것이 생사(生死)이며,
한 숨 내쉬고 한 숨 들이쉬는 것이 생사이다.
생사의 호흡지간에 사는 사람이 어찌 위태롭지 않다고 하는가.’
밖으로는 높은 벼슬을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고
안으로는 가정 살이로 인한 번뇌로 심화(心火)가 끊어지지 않으니
비록 단단한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다고는 하나
티끌 같은 지식으로 교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전도몽상에 빠져 오욕락(財,色,食,名,睡)만 쫓다가
삼악도에 떨어지면 어찌하려고...
한낱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위험에 비교나 되겠는가..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당신이
높은 나무에 있는 나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말이었다.
이에 백낙천은 스님의 도력에 놀라 공손히 절을 올리고
태수로서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심오한 법문의 가르침을 청하며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악을 짓지 말고 선을 쌓으시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하고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하라!]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중국 천지에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세속을 등졌다 하지만
자기 이름 석 자는 들었을 법 한데 이건 큰 망신이었다.
괘씸한 생각까지 든 백 낙천은 코웃음 치듯 내뱉었다.
“그건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말입니다.”
라며 신통치 않다는 듯 돌아서려는데,
스님은 너털 웃음을 웃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라네..."
그 말을 알아들었으니 역시 백 낙천이라 하리라.
백 낙천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어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이루었다.
마음 씀씀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말로 잘 알려져 있는 일화 입니다.
부처님 께서는
꿈같고, 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같다.
라고 경고 하셨고
옛 조사 스님들은
‘발 밑을 살펴라(照顧脚下)’고 하셨습니다.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서는 발 밑을 볼 수 없습니다.
백낙천이 속세의 행복을 얻었다 한들
결국 알고 보면 그렇게 허망한 것이거늘
그런 것을 추구하고 그런 것에 의지하고 있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행복의 파랑새는 우리 마음에 있어요.
고개 숙이고 낮춤은 비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화하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 白居易(字는 樂天 772~846)
李白(701~762), 杜甫(712~770), 韓愈(768~824)와 더불어 唐대의 4대 시인이다.
"居易"는 中庸의
"군자는 편안한 위치에서 천명을 기다린다(君子居易以侯命)"는 말에서 취했고,
"樂天"은 [易(역), 繫辭(계사)]의 (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취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하여 5세부터 시를 짓는 법을 배웠다.
그는 29세에 진사시에 합격해서 관직을 시작하고 刑部尙書(형부상서)까지 오르고
7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琵琶行, 長恨歌 등을 비롯한 3,8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마흔 네살 때인 元和(원화) 10년(815년) 5월 당나라 수도 長安에서
재상 武元衡(무원형)이 오원제 등 반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치적인 음모와 관련된 사건이라 모두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으나
의분을 못이긴 백거이는 조정관리들을 대신해 범인체포를 상소 하였다.
그러나 諫官(간관)이 아닌 자가 상소를 올려 보고계통을 무시했다는 죄명으로
백낙천은 그의 나이 44세 때
江州司馬(강주사마)로 좌천되어 4년을 강주와 여산에 머물렀다.
백낙천은 장안에서 내 쫓겨 객지로 추방당한 까닭에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듬해 가을 어느날 저녁 마침 손님을 배웅하러 江州 나룻터에 나섰다가
애절한 琵琶 가락을 들었다.
그 비파를 타는 여자로부터
그녀가 왕년에는 교방에 이름을 날리던 기녀로 지금은 늙어 상인한테 시집을 갔고
남편은 장사꾼이라 재물은 중시하지만 부부간의 별리는 가벼이 여겨
멀리 차를 사러 타관으로 떠난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기구한 사연을 전해 듣게 되었다.
문득 나이 들어서 버림을 받은 비파녀와 좌천되어 온 작가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노래한 것이 비파행(琵琶行)이다.
일행이 다시 술자리를 마련하고 그녀에게 정중하게 한곡을 청하자
그녀는 비파소리에 젖어 과거에는 화려했으나 지금 쇠락한 자신의 신세를 털어 놓았다.
백낙천은 유랑하는 그녀의 신세가 객지에서 쓸쓸하게 지내는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주소주락옥반(大珠小珠落玉盤)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구른다.
백낙천은 여인의 비파소리를 이렇게 비유했다.
음악이란 그 음악을 들을 만한 사람이 들어야 하고 그 감동이 시문을 남긴다
백낙천이 비파를 탄 여인에게 청했다.
莫辭更坐彈一曲 爲君翻作琵琶行(막사갱좌탄일곡 위군번작비파행)
다시 한곡 연주함을 사양하지 마시오
내가 그대를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다...
이에 마침내 7언 88수 616글자의 장편 敍事詩 琵琶行을 짓게 되었다.
이 가운데 백낙천이 그녀와의 만남에 대해 감정을 표현했는데
同是天涯淪落人(동시천애윤락인) 우리는 같은 천애의 불행한 신세
相逢何必曾相識(상봉하필증상식) 상봉이 어찌 아는 사이만의 일이랴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그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비파 소리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는데
이것을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座中泣下誰最多(좌중읍하수최다) 좌중에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는가?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강주사마의 푸른 소매자락이 흠뻑 젖어 있구나
당시의 풍습이 그러했는지 그 여인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백낙천이 지은 시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뭇 사람들이 애송하는 천고의 명시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는 平民 시인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평이한 시를 지었다.
蘇東坡는 이를 일컬어 元輕白俗이라 평하였다.
원진(元稹)의 시는 경조부박(輕佻浮薄,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움)하고,
백거이(白居易)의 시는 이속(俚俗, 고상하지 못하고 속됨)함.
그러나 백낙천이 평범한 말로 시를 지은 것에는 위와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 琵琶行 - 白 居易 -
琵琶行 幷序(비파행 병서)
元和十年, 予左遷九江郡司馬.(원화십년, 여좌천구강군사마)
明年秋, 送客湓浦口.(명년추, 송객분포구)
聞舟中夜彈琵琶者,(문주중야탄비파자)
聽其音錚錚然有京都聲.(청기음쟁쟁연유경도성)
問其人, 本長安倡女.(문기인, 본장안창녀)
嘗學琵琶於穆曹二善才,(상학비파어목조이선재)
年長色衰, 委身爲賈人婦.(연장색쇠, 위신위가인부)
遂命酒, 使快彈數曲.(수명주, 사쾌탄수곡)
曲罷憫然.(곡파민연)
自敍少小時歡樂事,(자서소소시환락사)
今漂淪憔悴, 轉徒於江湖間.(금표륜초췌, 전도어강호간)
予出官二年,(여출관이년)
恬然自安, 感斯人言, 是夕始覺有遷謫意.(념연자안, 감사인언, 시석시각유천적의)
因爲長句, 歌以贈之,(인위장구, 가이증지)
凡六百一十二言, 命曰 <琵琶行>.(범육백일십이언, 명왈 <비파행>)
琵琶行을 지으며 序文을 쓰다
원화 10 년에 나는 구강군사마로 좌천되었다.
다음해 가을 손님을 배웅하러 분포강(湓浦江) 포구에 나갔다가,
배 속에서 비파 타는 소리를 들었고,
쟁쟁(錚錚)하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들으니 전에 서울(京都)에서 듣던 소리였다.
그 사람을 찾아보니 원래 장안에서 노래하던 여자였는데,
일찍이 유명한 穆, 曹 두 선생에게서 비파를 배운 비파의 고수였다고 한다.
나이 들어 모습이 쇠퇴하게 되자
장사꾼에게 시집가서 의지하게 된 것이라 한다.
끝내 술상을 차리게 하고 몇 곡 청해 들었는데,
연주를 끝내고 참담해 졌다.
젊고 예뻤을 시절엔 웃고 즐기기만 하다가
이제는 시골구석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고.
나(백거이)도 이 시골로 쫓겨 온지 2년,
스스로 편안하게 마음먹으려 했지만,
오늘 밤 이 여인의 말에 끝내 감격해서
비로소 멀리 귀양살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긴 長句의 노래를 지어 이 여인에게 보낸다.
모두 612 字인데, <琵琶行> 이라 부른다.
제1단 심양강 나루에 울려 퍼진 천하절창 비파소리
潯陽江頭夜送客(심양강두야송객) 심양강 어구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려니
楓葉荻花秋瑟瑟(풍엽적화추슬슬) 단풍잎, 갈대꽃 흔들리는 가을이 쓸쓸하다.
主人下馬客在船(주인하마객재선)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에 오르며
擧酒欲飮無管絃(거주욕음무관현) 술을 마시려니 음악이 없다.
酒不成歡慘將別(주불성환참장별) 취기가 오르지도 않았는데 슬픈 이별하려니
別時茫茫江浸月(별시망망강침월) 이별의 시간, 망망한 강에 달빛이 젖어 든다.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문득 강 위로 들리는 비파소리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주인은 돌아갈 생각 잊고 손은 떠나지 못한다.
尋聲暗問彈者誰(심성암문탄자수) 소리를 찾아 비파 타는 사람 누구인지 물어도
琵琶聲停欲語遲(비파성정욕어지) 비파소리는 그쳤는데 말을 하려니 말소리 더디다.
移船相近邀相見(이선상근요상견) 배를 옮겨 가까이 다가가 서로 마주 보고
添酒回燈重開宴(첨주회등중개연) 술을 더하고 등불을 밝혀 다시 술자리를 열었다.
千呼萬喚始出來(천호만환시출래) 천만 번을 불러서야 비로소 나왔는데
猶抱琵琶半遮面(유포비파반차면) 여전히 얼굴 반쯤 가린 채로 비파를 끼고 있었다.
轉軸撥絃三兩聲(전축발현삼량성) 축을 조이고 현을 퉁겨 두세 번 소리 내고는
未成曲調先有情(미성곡조선유정) 곡조도 타기 전에 정이 먼저 이는구나.
絃絃掩抑聲聲思(현현엄억성성사) 줄을 누르고 퉁길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
似訴平生不得志(사소평생부득지) 평생 이루지 못한 정을 하소연하는 듯.
低眉信手續續彈(저미신수속속탄) 고개 숙이고 손끝을 따라 이어지는 연주
說盡心中無限事(설진심중무한사) 가슴 속에 서린 끝없는 사연을 털어놓은 듯.
輕攏慢撚撥復挑(경롱만연발부도) 가볍게 누르고 살짝 비틀었다 다시 퉁긴다.
初爲霓裳後六絃(초위예상후육현) 먼저 예상곡을 연주하고 뒤에 육요를 연주한다.
大絃嘈嘈如急雨(대현조조여급우) 큰 줄에서는 소나기처럼 세찬 소리 나고
小絃切切如私語(소현절절여사어) 작은 현에서는 절절한 속삭임 같다.
嘈嘈切切錯雜彈(조조절절착잡탄) 세차기도 하고 절절하기도 한 온갖 소리
大珠小珠落玉盤(대주소주락옥반) 크고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
閑關鶯語花底滑(한관앵어화저활) 한가한 대문 안 꾀꼬리 소리 꽃 가지 아래 매끄럽고
幽咽泉流水下灘(유열천류수하탄) 흐느끼듯 흐르는 샘물이 여울로 떨어진다.
水泉冷澁絃凝絶(수성냉삽현응절) 물줄기 얼어붙듯이 현이 얼어붙으며 소리는 끊어지고
凝絶不通聲暫歇(응절불통성잠헐) 얼어붙은 듯 끊어진 소리, 점점 사라진다.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따로 그윽한 슬픔, 남 모르는 한이 되 살아나는 듯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이러한 때는 비파소리 울릴 때보다 더 좋았다.
銀甁乍破水漿迸(은병사파수장병) 은병이 깨어져 물 줄기가 치솟듯
鐵騎突出刀鎗鳴(철기돌출도쟁명) 철마가 뛰어오르고 칼과 창이 부딪치듯,
曲終收撥當心畫(곡종수발당심화) 곡이 끝나자 채를 뽑아 비파중심을 획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열백) : 비단이 찢어지듯 네 현에서 한꺼번에 소리를 낸다.
東船西舫悄無言(동선서방초무언) 동쪽 배, 서쪽 배 사람들 모두 할 말을 잊고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강 가운데서 밝은 가을 달만 바라 볼 뿐이다.
제2단 늙은 창부의 회상과 하소연
沈吟收撥揷絃中(침음수발삽현중) 침울하게 채를 거두어 줄에 꽂고
整頓衣裳起劍容(정돈의상기검용) 옷 차림을 정돈하고 일어나 얼굴을 가다듬었다.
自言本是京城女(자언본시경성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장안 여자로
家在蝦蟇陵下住(가재하마릉하주) 하마릉 아래에 살았었는데
十三學得琵琶成(십삼학득비파성) 열세 살에 비파를 익혔고
名屬敎坊第一部(명속교방제일부) 저의 이름은 교방의 제1부에 속해 있었습니다.
曲罷常敎善才服(곡파상교선재복) 한 곡조 타면 스승들도 탄복하고
粧成每被秋娘妬(장성매피추낭투) 몸치장하면 기녀들의 질투도 받았습니다.
五陵年少爭纏頭(오릉년소쟁전두) 오릉의 청년들이 다투어 찾아왔고
一曲紅綃不知數(일곡홍초부지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붉은 비단 셀 수 없이 받았습니다.
鈿頭銀蓖擊節粹(전두은비격절수) 자개 박은 은비녀 장단 맞추다 다 부러지고
血色羅裙飜酒汚(혈색나군번주오) 붉은 색 비단 치마 술에 얼룩졌습니다.
今年觀笑復明年(금년관소부명년) 올해도 기뻐서 웃고, 이듬해도 기뻐 웃으며
秋月春風等閒度(추월춘풍등한도) 가을 달, 봄바람 한가롭게 보냈습니다.
弟走從軍阿姨死(제주종군아이사) 남동생 싸움터로 가고 양모도 죽고 나니
暮去朝來顔色故(모거조래안색고) 저녁 가고 아침 오면 얼굴빛도 시들어 갔소.
門前冷落鞍馬稀(문전냉락안마희) 대문 앞은 말 타고 찾아오는 이 없어 쓸쓸해지고
老大嫁作商人婦(노대가작상인부) 늙은 이몸 장사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商人重利輕別離(상인중리경별리) 장사치는 이 속에만 밝고 이별은 가볍게 여기는지라
前月浮梁買茶去(전월부량매다거)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떠났습니다.
去來江口守空船(거래강구수공선) 강나루 오가며 빈 배만 지키는데
遶船明月江水寒(요선명월강수한) 뱃전에 달은 밝고, 강물은 차가워
夜深忽夢少年事(야심홀몽소년사) 깊은 밤에 홀연히 어린 시절을 꿈에서 보니
夢啼粧淚紅闌干(몽제장루홍난간) 꿈속에서도 서러워 화장한 얼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3단 백낙천의 좌천 생활 하소연
我聞琵琶已歎息(아문비파이탄식) 이미 비파소리에 탄식하는데
又聞此語重喞喞(우문차어중즐즐) 다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거듭거듭 탄식이 나온다.
同是天涯淪落人(동시천애륜락인) 그대와 나 같은 하늘 아래 떠도는 몸으로
相逢何必曾相識(상봉하필증상식) 이렇게 서로 만나는데 어찌 본디 아는 사이어야 하는가.
我從去年辭帝京(아종거년사제경) 이 몸은 지난해 장안을 떠나
謫居臥病瀋陽城(적거와병심양성) 심양으로 귀양와 병들어 누웠다네.
瀋陽地僻無音樂(심양지벽무음악) 심양은 외진 땅이라
終歲不聞絲竹聲(종세불문사죽성) 일 년이 다 가도록 음악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오.
住近湓江地低濕(주근분강지저습) 사는 곳이 가까운 분강 땅이라, 땅이 낮고 습하여
黃蘆苦竹遶宅生(황로고죽요택생) 누런 갈대와 마른 대나무만이 집 둘레에 우거졌다오.
其間旦暮聞何物(기간단모문하물) 여기서 아침저녁 무엇을 듣겠는가.
杜鵑啼血猿哀鳴(두견제혈원애명) 피 토하는 두견새와 애절한 원숭이 울음 소리뿐.
春江花朝秋月夜(춘강화조추월야) 강가의 꽃이 피는 봄날 아침, 달 뜨는 가을밤
往往取酒還獨傾(왕왕취주환독경) 때때로 술 가져와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
豈無山歌與村笛(기무산가여촌적) 어찌 산촌에 노랫소리, 피리소리 없으련만
嘔啞嘲哳難爲聽(구아조찰난위청) 벙어리 말 배우고 새 웃음 짓듯 알아듣기 어려워라.
今夜聞君琵琶語(금야문군비파어) 오늘 밤 그대의 비파소리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여청선악이잠명) 신선의 음악 듣는 듯 귀가 밝아진다.
莫辭更坐彈一曲(막사갱좌탄일곡)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조 타 주시면
爲君飜作琵琶行(위군번작비파행) 난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다.
제4단 동병상련의 눈물 -화려한 날들은 가고
感我此言良久立(감아차언양구립) 내 말에 감격하여 한참 서 있더니
却坐促絃絃轉急(각좌촉현현전급) 다시 앉아 현을 고르고 급히 비파를 탄다.
凄凄不似向前聲(처처불사향전성) 전보다 더 처연해진 소리에
滿座聞之皆掩泣(만좌문지개엄읍) 좌중 사람들이 듣고서 모두가 눈을 가리고 운다.
座中泣下誰最多(좌중읍하수최다) 그 중에 누가 자장 많이 눈물 흘렸던가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푸른 적삼 눈물에 다 젖은 강주사마 였더라.
<비파행>의 배경이자 현장이던 심양 강가에
당나라 때 강주(江州) 사람들은 비파정(琵琶亭)을 지어
백거이 명작의 산실을 기념했다.
이 비파정은 1천여년 강물을 굽어보며 백거이 문학을 증언하다가
청나라 말기 병란(兵亂)에 소실되었다.
그후 새로 건립한 비파정(琵琶亭)이 양자강 장강대교(長江大橋) 옆에 서있다.
이 비파행 시는 칠언(七言) 87행 609字로 본문이 이루어 졌으며,
제목 琵琶行 3字를 합하여 모두 612자의 글로 이루어 졌는데,
그 동안 글자의 첨삭은 없었다고 보여진다.
이 시문을 읽노라면 백낙천 만이 쓸 수 있는 문자로
음악을 시각화(視覺化)하면서,
변천하는 운명에의 통곡을 표상하고 인간의 비애를 빼어나게 결정시켰다.
그 후에 이 시는 음악을 문자로 정착시키는 수법의 지침이 되었고,
또 음악 연주자와 시인의 인간관계적 구성을 거쳐
소설과 희곡에 오래도록 題材를 제공하였다.
서 유럽에서는 《장한가(長恨歌) Everlasting Remorse)》에 대응하는
‘류트송(Lute Song)’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鶴 - 白 樂天 -
人各有所好(인각유소호)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바가 있으나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 사물에는 애당초 꼭 그래야만 된다는 법도 없다네
誰謂爾能舞(수위이능무) 누가 너를 일러 춤을 잘 춘다고 하는가
不如閒立時(불여한립시) 한가롭게 서 있을 때만 못한 것을...
백 마디의 웅변 보다 침묵이 금이라는 구절이 떠 오르는 시입니다.
이백, 두보, 왕유와 더불어 당나라 시절을 대표하는
네 사람의 시인 반열에 오른 白樂天, 白居易의 학을 노래한 시입니다.
세 사람과 달리 관운도 좋아 평생 동안 늦게 까지 벼슬길에 있으면서
다작이라 할 정도로 많은 시를 썼습니다.
평생에 陶淵明을 사모했고, 학을 좋아했으며, 거문고와 시와 술을 세 벗이라 하면서
삼천여 편의 시문을 지어 냈던 시인입니다.
□ 勸學文 - 白 樂天 -
有田不耕倉廩虛(유전불경창름허) 밭이 있어도 갈지 아니하면 창고가 비고
有書不敎子孫愚(유서불교자손우)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들이 어리석어진다
倉廩虛兮歲月乏(창름허혜세월핍) 창고가 비면 세월이 궁핍해지고
子孫愚兮禮義疎(자손우혜예의소) 자손이 어리석으면 예의가 소홀해진다
若惟不耕與不敎(약유불경여불교) 만약에 경작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면
是乃父兄之過歟(시내부형지과여) 이것은 곧 부형의 잘못이라
□ 夜雨 - 白 樂天 -
早蛩啼復歇(조공제부헐) 초가을 귀뚜라미 울다가 문득 멈추고
殘燈滅又明(잔등멸우명) 새벽의 등불이 꺼질 듯 다시 밝으니
隔牕知夜雨(격창지야우) 창 너머 밖엔 밤비 내리는 줄 알겠네
芭蕉先有聲(파초선유성) 파초 잎의 빗방울 소리 먼저 들리니
□ 早秋獨夜 - 白 樂天 -
井梧凉葉動(정오양엽동) 우물가 오동 닢이 싸늘하게 나부끼고
隣杵秋聲發(인저추성발) 가을의 이웃집 다듬이 소리 울릴 새
獨向簷下眠(독향첨하면) 홀로 처마 밑에서 잠자다 깨어 보니
覺來半牀月(각래반상월) 침상 머리에 달빛이 환하여라.
□ 夜雪 - 白 樂天 -
已訝衾枕冷(이아금침냉) 금침이 유난히 차갑구나 여기며
復見牕戶明(부견창호명) 창문을 바라보니 또한 훤하여라
夜深知雪重(야심지설중) 깊은 밤에 내린 눈이 무거워라
時聞折竹聲(시문절죽성) 대나무 꺾이는 소리 들려 오네
□ 微雨夜行 - 白 樂天 -
漠漠秋雲起(막막추운기) 막막한 검은 구름 가을 하늘을 덮고
悄悄夜寒生(초초야한생) 초초한 어두운 밤에 한기 스며들어
自覺衣裳濕(자각의상습) 스스로 옷이 젖는 줄을 알겠오 마는
無點亦無聲(무점역무성) 빗방울도 빗소리도 역시 없어라!
□ 菊花 - 白 樂天 -
一夜新霜著瓦輕(일야신상저와경) 간 밤에 첫 서리 기와에 가볍게 내리자
芭蕉新折敗荷傾(파초신절패하경) 파초 잎 새삼 꺾이고 시들은 연꽃 기울었노라
乃寒唯有東籬菊(내한유유동리국) 오직 동쪽 울타리의 국화만이 추위를 이기고
金粟花開曉更淸(금속화개효갱청) 노란 꽃송이들 밝은 아침 더욱 맑게 빛내노라
□ 暮江吟(해지는 강에서) - 白 樂天 -
一道殘陽鋪水中(일도잔양포수중) 한 줄기 석양 빛이 강물에 번지니
半江瑟瑟半江紅(반강슬슬반강홍) 강은 절반이나 푸르고 절반은 붉었네
可憐九月初三夜(가련구월초삼야) 가련타 구월 초사흘 청명한 밤인지라
露似眞珠月似弓(로사진주월사궁) 이슬방울은 진주 같고 달은 활 같아라
□ 贈內(아내에게) - 白 樂天 -
漠漠闇苔新雨地(막막암태신우지) 산듯이 뿌린 비로 후미진 곳에 이끼가 번지고
微微凉露欲秋天(미미양로욕추천) 차츰차츰 차가운 이슬에 가을이 짙어 가고저
莫對月明思往事(막대월명사왕사) 밝은 가을달 쳐다보니 옛일이랑 회상치 마오
損君顔色減君年(손군안색감군년) 그대 얼굴 상하고 그대 수명 줄까 두렵구려
□ 曲江有感(곡강에서) - 白 樂天 -
曲江西岸又春風(곡강서안우춘풍) 곡강의 서쪽 언덕에 봄바람이 다시 불새
滿樹花前一老翁(만수화전일노옹) 만 그루의 꽃나무 앞에 외로운 노인이 혼자
遇酒逢花還且醉(우주봉화환자취) 술을 마시고 꽃 보며 얼근히 취했노라
若論惆悵事何窮(약론추창사하궁) 슬픈 사연은 끝없거늘 새삼 논해 무엇하리요
□ 暮立(황혼에 서다) - 白 樂天 -
黃昏獨立佛堂前(황혼독립불당전) 황혼이 질 무렵 불당 앞에 홀로 섰노라니
滿地槐花滿樹蟬(만지괴화만수선) 빡빡이 피어난 회나무꽃 사이에 매미소리 요란해
大抵四時心總苦(대저사시심총고) 대저 사시 사계절에는 노상 마음이 괴롭거늘
就中腸斷是秋天(취중장단시추천) 가을철에는 더욱 창자가 끊어질 듯 아프고야
□ 聞虫(벌레 소리) - 白 樂天 -
暗蟲喞喞夜綿綿(암충즉즉야면면) 길고 긴 밤을 찌륵 찌륵 우는 숨은 벌레들
況是秋陰欲雨天(황시추음욕우천) 비를 내릴 듯 음산한 가을 하늘 스산할 새
猶恐愁人暫得睡(유공수인잠득수) 흡사 근심 많은 사람 잠들까 봐 겁 내는 듯
聲聲移近臥牀前(성성이근와상전) 침상 앞에 가까이 다가오며 더욱 찢어 우네
□ 空閨怨(외로운 아낙네) - 白 樂天 -
寒月沈沈洞房靜(한월침침동방정) 차가운 달은 밤 깊이 고요한 규방에 비쳐들고
眞珠簾外梧桐影(진주염외오동영) 진주 구슬발 밖으로 오동나무 그림자 지도다
秋霜欲下手先知(추상욕하수선지) 가을서리가 내리려나 손끝이 야릇하구나
燈底裁縫剪刀冷(등저재봉전도냉) 등불 밑에서 바느질할 새 가위가 싸늘 하여라
□ 平民의 벗 白樂天
樂天은 醉吟先生 또는 香山居士로 불렸으며,
唐 代宗 大曆 7년(772)정월 二十일 滎陽에서 출생했다.
동리 이름은 新鄭縣 東郭里 라고 전해진다.
형제는 모두 4형제로 형 幼文과 동생 行簡과 金剛奴와 두 누이 동생이 있었다.
그의 시는 글자가 어렵지 않고 읊조리기가 쉽고 풍유 시는 서민의 아픈 곳을
대변하고 감상 시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만고의 명시가 되었다.
그는 "임금을 위해, 신하를 위해, 백성을 위해, 사물을 위해, 사건을 위해서
시를 지었지. 시 자체를 꾸미기 위해서 시를 짖지 않았다"고 했다.
"爲君 爲臣 爲民 爲物 爲事而作, 不爲文而作也"(新樂府序)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시문의 글자가 어려워서는 안되기에
백거이는 시 한편을 지으면 노파에게 들어보게 하여
그녀가 이해를 하면 그대로 두고
이해를 하지 못하면 시구를 다시 고쳤다고 합니다.
풍유 시에는 황제는 물론이고 권력자와 탐관오리를 고발하고,
궁녀와 기녀, 농부 등 사회의 약자가 겪는 고통을
시로서 동정하고 애민정신을 나타내었다.
백거이는 李白이 죽은지 10년, 杜甫가 죽은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韓愈와 더불어 ‘李杜韓白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글 재주를 보였다.
대대로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800년 29세로 進士에 급제하였고
32세에 황제의 親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에 지은 『長恨歌』가 있다.
807년 36세로 한림학사가 되었고, 이듬해에 左拾遺가 되어 유교적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정치사회의 결함을 비판하는 작품을 계속 써냈다.
『新樂府 50수』(805)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811년 4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에 어린 딸마저 잃자 인생에 있어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814년 태자 左贊善太夫에 임용되었으나,
이듬해에 일찍이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시가의 대상이 되었던 고급 관료들의
반감을 사서 주장[九江]의 司馬로 좌천되었다.
그 곳에서 인생에 대한 회의와 문학에 대한 반성을 거쳐 명시
『琵琶行』(816)을 지었다. 818년 忠州刺史가 되었으며,
임기를 마치고 長安에 돌아오자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하여
822년 자진해서 杭州刺史가 되었다.
항저우의 아름다운 風光에 촉발되어 詩作은 계속되었고,
문학적 知己로서 트고 지내던 元拂과 만나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 白氏長慶集)』(50권, 824)을 편집하였다. 825년 蘇州刺史로 전임하였으나
827년에는 중앙으로 불리어 秘書監에 임명되었다.
829년 58세가 되던 해 뤄양에 영주하기로 결심,
河南府의 성주가 되었던 때도 있었으나 대개 太子補導官이라는 명목만의 직책에
자족하면서 시와 술과 거문고를 三友로 삼아 ‘취음선생’이란 호를 쓰며
유유자적하는 나날을 보냈다.
831년 원진 등 옛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자 인생의 황혼을 의식하고
뤄양 교외의 龍門의 여러 절을 자주 찾았고 그 곳 香山寺를 보수 복원하여
‘香山居士’라는 호를 쓰며 불교로 기울어졌다.
이에, 문학에 대한 충동도 번뇌로 보여서 참회하는 입장에서
‘狂言綺語의 문집인 『 劉白唱和集 5권』『白氏文集』60권을,
다시 65권, 67권을 834~839년에 걸쳐 마음의 증표로서
연고 있는 사찰에 봉납하였다.
842년 71세 때 刑部尙書의 대우로 퇴직하였는데,
『백씨문집』》은 70권에 이르렀다.
그 뒤로도 ‘狂詠’은 계속되었고 정부의 불교탄압정책을 풍자하는 작품을 통해서
자기 시대의 종말을 예감하고 인생의 마무리로서 75권의 전집을 編定,
그것이 완성된 이듬해 그 생애를 마쳤다.
이 밖에 詩文을 짓는 편의를 위해서 고사성어를 모은
『 白氏六帖事類集』 30권이 있다.
현재 전하는 것은 『백씨장경집』 75권 가운데 71권이 있고,
『백향산시집』 40권도 있다.
현존하는 작품 수는 3,800여 수이고,
그 중에서 『琵琶行』『長恨歌』『遊悟眞寺詩』는 불멸의 걸작이다.
□ 白樂天의 思想
白樂天의 思想은 儒敎와 道敎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가 44세에 江州司馬로 貶謫(폄적)되었던 시기를 놓고, 전과 후로 양분한다.
즉 초기에는 儒家 思想이 짖고, 후 반부로 갈수록 道, 佛 에 기울어
은퇴와 독선을 높였다.
그는 스스로 말 하길「나는 본래 유학에 젖은 집의 가손이다 .
지금은 진나라 땅 함양의 나그네지만 전에는 주 나라의 맹자와 공자를 따르는
유학자 였노라」백거이 만큼 평민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또 있었을까 ?
「백성을 귀중히 여겨 사직하는 것은 그 다음이고
임금은 또 그 다음으로 대단치 않다」라고 한 맹자의 사상에 동조하여
항상 백성들 편에 섰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평민들의
애환이 구구 절절히 잘 그려져 있다.
또, 白樂天은 逍遙詠에서 이렇게 읊었다.
「이 몸을 그리워도 말고 또한 싫어 하지도 말아라.
이 몸은 만겁 번뇌의 뿌리거늘 어찌 그리워 하랴.
또 이 몸은 허공 같은 먼지가 웅친 것이니 어찌 싫어하랴」라고 했다.
이 시는 佛家의 精神世界를 그린 것이라 하겠다.
아래의 시 讀老子에서
言者不知知者黙 말 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침묵 한다고
此語吾聞於老君 나는 노자로 부터 배웠다.
若道老君是知者 그런데, 노자가 참으로 아는 자라면
綠何自著五千文 왜 오천자의 도덕경을 지었을까 ?
또 讀莊子 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로 반박하기도 했다.
「장자는 만물이 다 같고, 다 하나로 돌아 간다고 했으나
내 생각에는 같은 중에서도 같지 않음이 있다고 본다.
모든 것이 한결 같이 본성을 따라 소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난새나 봉황새는 어디까지나 뱀이나 벌레 보다는 뛰어 났노라」
이 시는 그의 나이 63세에 지은 것이다.
이를 보면 백낙천은 老莊思想에서 좋은 것은 다 취했다.
儒家思想에 투철했던 은 도를 따라 청빈을 높이고,
절대로 명리에 욕심을 채우고자 혼탁한 속세에 끼여 들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주어진 삶을 고맙고 만족스럽게 즐길 줄 알았다.
「이것 저것 탐내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또 엉키는 것 없으니 몸도 태평하다.
이렇게 십년을 지내니 몸이나 정신이 한가롭기만 하다.
더우기 나이를 먹으니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도 않구나.
옷 하나면 겨울 따듯이 나겠고, 밥 한기면 종일 배가 부르다.
집이 작다고 말 하지 마라. 방 하나면 잠잘 수 있다.
말도 많을 필요가 없다.
나같이 행복한 사람은 열중 일곱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이 안분지족 할 줄 아는 사람은 백중의 하나도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
贈內에서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은 육신의 존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배부르고 춥지 않게 옷이나 음식을 취하면 되고,
초조하고 간소한 음식으로 허기를 메꾸면 되지 고량진미를 먹을 필요가 없다.
또 추위를 막을 솜 옷이면 족하지 비단에 무늬 옷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라고 했다. 참으로 검소하고 無爲自然다운 삶을 살다간 詩人이다.
그가 여산의 빼어남을 표현한
匡廬奇秀甲天下 광려산의 빼어난 경치는 천하의 으뜸이란 말은 후세에
여산을 소개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명구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말쑥하게 말라 비틀어진 몰골이 지만 시 쓰는 게 버릇이 되었다.
평생 갚아야 할 빛이 시와 노래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신선이라 하고 모르는 사람은 시마 라고 한다.
전생의 나는 필경 중 이였을 것이다 」
또 시와 거문고와 술을 三友라 하여 늘 함께 하며 즐겼다.
詠拙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귀한 사람 부럽고, 천한 몸 되기 싫으며, 부유함이 좋고 가난함이 싫어라.
남과 같이 천지간에 태어 났거늘 나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
그러나, 내가 타고 난 운수가 그러하거늘
억지로 순리를 바꾸면 오히려 하늘의 노여움 사리」라고 했다.
거칠 것 없이 살다간 樂天 그도 陶淵明을 무척 그리워 했다.
<張基槿 先生님의 글>
□ 붙이는 글
白樂天은 陶淵明과 너무도 흡사한 삶과 思想을 가지고 글을 지었다.
비슷한 시대에 태어난 두 사람. 백낙천은 도연명을 몹시 그리워 하면서
그를 닮고자 했다. 유연한 일상과 함께 물욕을 버리고 淸貧하게 살다간
두 시인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奇人이다.
당대 수많은 詩人들이 中原을 누비며 마음껏 취하고 글 쓰며 天下를 노래했어도
淵明과 樂天같이 스스로 실천하며 살다간 이는 드물다.
□ 逍遙詠 <자유로이 읊는다>
赤莫戀此身(적막연차신) 이 몸을 그리워도 말고
赤莫厭此身(적막염차신) 또한, 싫어하지도 말아라
萬劫煩惱根(만겁번뇌근) 이 몸은 만겁 번뇌의 뿌리거늘 어찌 그리워 하랴
一聚虛空塵(일취허공진) 또 이 몸은 허공 같은 먼지가 모인 것이니,
無戀赤無厭(무연적무염) 그리움도 없고 싫어함도 없어야
始是逍遙人(시시소요인) 비로소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리라
□ 不如來飮酒 <차라리 술 마시라>
莫入紅塵去(막입홍진거) 혼탁한 먼지 속 세상에서
令人心力勞(영인심력노) 몸과 마음을 헛되게 하지 말아라
相爭兩蝸角(상쟁양와각) 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싸워서
所得一牛毛(소득일우모) 이기면 얻는 것은 한 가닥 소의 털 뿐이다
且滅嗔中火(차멸진중화) 화를 가라 앉히고
休磨笑裏刀(휴마소리도) 겉으로 웃고 속으로도 칼 숨기지 말아라
不如來飮酒(불여래음주) 차라리 서로 화해하고 술이나 나누며
穩臥醉陶陶(온와취도도) 조용히 누워 은은하게 취하게나
□ 丘中有一士1 <산속의 선비>
丘中有一士(구중유일사) 산 속에 선비가 있으나
不知其姓名(부지기성명) 그의 이름은 알지 못하노라
面色不憂苦(면색불우고) 얼굴엔 근심이나 걱정하는 빛이 없고
血氣常和平(혈기상화평) 언제나 화사한 얼굴이 평화롭다
每選隙地居(매선극지거) 항상, 한적한 곳에서 살아
不踏要路幸(불답요로행) 절대로 편안한 길을 밟지 않는다
擧動無尤悔(거동무우회) 거동에 잘못이나 뉘우칠 일 하지 않으니
物莫與之爭(물막여지쟁) 남들과 다투는 일이 없다
黎藿不充腸(여곽불충장) 콩잎 조차 배불리 먹지 않고
布葛不蔽形(포갈불폐형) 거친 갈포 조차 몸을 가리지 못하네
終歲守窮餓(종세수궁아) 늘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려도
而無嗟歎聲(이무차탄성) 한 마디 탄식하는 소리가 없다
豈是愛貧賤(기시애빈천) 어찌 가난이 좋아서 그러겠는가
深知時俗情(심지시속정) 속세의 정을 깊이 알기 때문이리라
勿矜羅弋巧(물긍라익교) 그물이나 활 솜씨 자랑 말아라
鸞鶴在冥冥(난학재명명) 혼탁한 세상이지만 학 같은 선비는 아득히 날고 있다
□ 丘中有一士 2 <산속의 선비 2>
丘中有一士(구중유일사) 산 속에 사는 선비가 있어
守道歲月深(수도세월심) 도를 지키며 오랜 세월 보내네
行披帶索衣(행피대삭의) 걸을 때는 새끼 띠 메고
坐拍無絃琴(좌박무현금) 앉아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탄다
不飮濁泉水(불음탁천수) 흐린 샘물은 마시지 않고
不息曲木陰(불식곡목음) 굽은 나무 그늘에는 쉬지를 않으며
所逢苟非義(소봉구비의) 티끌 만큼이라도 예의에 어긋나면
糞土千黃金(분토천황금) 천냥의 황금도 흙 같이 여기네
鄕人化其風(향인화기풍) 마을 사람들 그의 품행 따르니
薰如蘭在林(훈여난재림) 난초 숲에 있는 듯 향기가 나네
智愚與强弱(지우여강약) 지혜롭든 어리석든 강하든 약하든
不忍相欺侵(불인상기침) 서로 속이고 괴롭히는 일 없노라
我欲訪基人(아욕방기인) 그 선비 만나 보고 싶은 마음에
將行復沈吟(장행부침음) 나섰다가 다시 걸음 멈추었다
何必見其面(하필견기면) 그 선비 반드시 만나 봐야만 하랴
但在學其心(단재학기심) 그의 마음 알았으니 형상에 얽매이랴
□ 悲哉行 <슬프다 선비여>
悲哉爲儒者(비재위유자) 슬프다 선비의 신세는
力學不知疲(역학부지피) 지칠 줄 모르고 학문에 힘써
讀書眼欲暗(독서안욕암) 책 읽느라 눈이 어두워지고
秉筆手生眡(병필수생지) 붓 잡은 손에는 굳은 살이 배였네
十上方一第(십상방일제) 열 번 시험 봐야 어렵게 급제하니
成名常苦遲(성명상고지) 이름내기 힘들고 늙어서가 걱정일세
縱有宦達者(종유환달자) 벼슬자리 구하여 얻는다 해도
兩鬢已成紗(양빈이성사) 귀밑머리 이미 백발되네
可憐少壯日(가련소장일) 불쌍하게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適在窮賤時(적재궁천시) 궁핍하고 천하게만 지내다가
丈夫老且病(장부노차병) 장부 되자 늙고 병드니
焉用富爲貴(언용부위귀) 부귀와 영화 누린들 무슨 소용있으랴
沈沈朱門宅(침침주문댁) 웅장한 붉은 대문 집 안에는
中有乳臭兒(중유유취아) 귀족의 젖내나는 아이가 있어
狀貌如婦人(상모여부인) 얼굴 생김은 여인과 같고
光明膏梁肌(광명고량기) 기름진 살결은 희게 빛나네
手不把書卷(수불파서권) 손에는 책을 든 흔적 없고
身不環戎衣(신불환융의) 몸에는 군복 입은 적이 없으며
二十襲封爵(이십습봉작) 스물에 봉지와 작위를 세습 받고
門承勳戚資(문승훈척자) 가문의 공훈으로 얻은 재물로
春來日日出(춘래일일출) 봄이면 날마다 밖으로 나가는데
服御何輕肥(복어하경비) 비단옷에 살찐 말 만 타네
朝從博徒飮(조종박도음) 노름패와 아침부터 주점에서 술 마시고
暮有娼樓期(모유창루기) 저물면 기약한 창루로 가서
平封還酒債(평봉환주채) 봉지의 세금으로 술빚을 갚고
堆金選蛾眉(퇴금선아미) 금을 쌓아 놓고 미인을 고르니
聲色狗馬外(성색구마외) 주색잡기 이외에는
其餘一無知(기여일무지) 아는 것이 없구나
山苗與澗松(산묘여간송) 산의 묘목과 골짜기의 소나무가
地勢隨高卑(지세수고비) 지세 따라 높고 낮게 자라는 것은
古來無柰何(고래무내하) 예로부터 어찌 하지 못하는 일이었거늘
非獨君像悲(비독군상비) 유독 그대 혼자만이 슬퍼하는가
□ 何處難忘酒 <술 생각 하고>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술이 생각 날 때는 ?
天涯話舊情(천애화구정) 멀리 헤어졌던 벗을 만나 정담을 나눌 때
靑雲俱不達(청운구부달) 함께 청운의 뜻을 폐지 못하고
白髮逮相驚(백발체상경) 백발이 성성한데 서로 놀라고
二十年前別(이십년전별) 이십년 전에 헤어져 떠돌다
三千里外行(삼천리외행) 삼천리 밖에서 다시 만나니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이럴 때 술 한잔 없다면
何以敍平生(하이서평생) 평생의 사연을 어찌 말하리
□ 不致仕 <위정자>
七十而致仕(칠십이치사) 나이 칠십이면 벼슬에서 물러나라고
禮法有明文(예법유명문) 예 법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거늘
何乃貪榮者(하내탐영자) 어찌 영화를 탐하는 그대들은
斯言如不聞(사언여불문)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가
可憐八九十(가련팔구십) 가련하다 나이 팔구십이 되어서
齒墮雙眸昏(치타쌍모혼) 이가 빠지고 두 눈이 흐린데
朝露貪名利(조로탐명리) 아침이슬 신세로 명리를 욕심내고
夕陽憂子孫(석양우자손) 저녁노을 처지에 자손을 걱정하네
掛冠顧翠緌(괘관고취유) 관 끈 장식 걸려 관을 벗지 못하고
縣車惜朱輪(현거석주륜) 붉은 바퀴 아까워 수레에 타지 못하네
金章腰不勝(금장요불승) 허리에 찬 금장을 이기지 못해
傴僂入君門(구루입군문) 곱사 등 같은 허리를 하고 대궐에 드는구나
誰不愛富貴(수불애부귀) 부귀영화 싫어할 사람 그 누구며
誰不戀君恩(수불련군은) 임금 은총 그 누가 그립지 않으리 만
年高須告老(연고수고노) 나이 들면 마땅히 늙었음을 인정하고
名遂合退身(명수합퇴신) 이름을 얻었으니 물러남이 옳은 것을
少時共嗤초(소시공치초) 젊어서는 늙은이들 비웃더니
晩歲多因徇(만세다인순) 나이 드니 핑계만 대는구나
賢哉漢二疏(현재한이소) 훌륭하다 ! 한나라의 소광과 소수
彼獨是何人(피독시하인) 그 두 사람만이 올바른 사람이었네
寂寞東門路(적막동문로) 동문로가 그 후로는 적막하구나
無人繼去塵(무인계거진) 그들처럼 스스로 물러나는 자가 없구나
□ 增內 <아내에게>
生爲同室親(생위동실친) 살아서는 한 방에서 사랑하고
死爲同穴塵(사위동혈진)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리라
他人尙想勉(타인상상면) 다른 사람도 부부의 도를 지키는데
而況我與君(이황아여군) 하물며 그대와 나는 더 할 나위 있겠는가 ?
黔婁固窮士(검루고궁사) 검루는 가난한 선비였으나
妻賢忘其貧(처현망기빈) 현명한 처는 가난을 잊었고
冀缺一農夫(기결일농부) 기결은 한낱 농부였으나
妻敬儼如賓(처경엄여빈) 처는 그를 귀빈처럼 공경했고
陶潛不營生(도잠불영생) 도연명은 생계를 못 꾸렸으나
翟氏自爨薪(적씨자찬신) 부인 적씨는 스스로 살림 꾸렸고
梁鴻不肯仕(양홍불긍사) 양흥은 벼슬살이 물리쳤으나
孟光甘布裙(맹광감포군) 그의 처 맹광은 베옷에 만족했네
君雖不讀書(군수불독서) 그대 비록 책은 읽지 못했어도
此事耳亦聞(차사이역문) 귀로는 들어 알고 있으리라
至此千載後(지차천재후) 천년이 지난 오늘에
傳是何如人(전시하여인) 그들이 어떠한 사람이라 전하는가를
人生未死間(인생미사간)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 있는 동안은
不能忘其身(불능망기신) 육신의 존재를 잊을 수는 없어
所須者衣食(소수자의식) 배를 채우고 몸을 가리기 위해
不過飽與溫(불과포여온) 먹고 입어야 하지만
蔬食足充饑(소식족충기) 배 고픔은 나물로 때우면 그만이지
何必膏梁珍(하필고량진) 어찌 기름진 음식이 필요하며
繒絮足禦寒(증서족어한) 거친 솜옷으로 추위만 막으면 되지
何必錦繡文(하필금수문) 어찌 비단 옷에 무늬가 필요하겠는가
君家有貽訓(군가유이훈) 그대 집에 내려오는 가르침에도
淸白遺子孫(청백유자손) 청렴결백을 자손에게 전하라 하였으니
我亦貞苦士(아역정고사) 나 또한 고지식한 선비로서
與君新結婚(여군신결혼) 그대와 부부가 된 이상에는
庶保貧與素(서보빈여소) 모쪼록 가난과 소박함을 지키어
偕老同欣欣(해로동흔흔) 기쁜 마음으로 부부 해로하리라
이 詩는 徐天<주인장>이 버들아씨<부인>에게 결혼 할 때에 적어준 글 입니다.
그러나 버들아씨는 이 시를 가장 싫어 합니다.
□ 詠拙 <영졸, 보잘 것 없음을 노래한다>
慕貴而厭賤(모귀이염천) 귀한 사람 부럽고 천한 사람되기 싫으며
樂富而惡貧(낙부이악빈) 부유함이 좋고 가난함이 싫어라
同出天地間(동출천지간) 남과 같이 천지간에 태어나서
我豈異於人(아기이어인) 나라고 왜 다르겠는가 ?
性命苟如此(성명구여차) 하지만, 내가 타고난 운수가 그러하거늘
反則成苦辛(반칙성고신) 억지로 하늘의 운명을 어겼다가는
以此自安分(이차자안분) 도리어 고생스럽게 되리라
雖窮每欣欣(수궁매흔흔) 따라서 나의 분수에 만족하고, 가난하고 어려워도
靜讀古人書(정독고인서) 조용히 옛 사람의 책 읽으며
閉釣淸渭濱(폐조청위빈) 한가롭게 맑은 강에서 낚시질하네
優哉復遊哉(우재부유재) 이렇듯 높고 한가로운 심정으로
聊以終吾身(료이종오신) 조용히 한 평생을 보내리라.
□ 出府歸吾廬 <내 집에 돌아와서>
出府歸吾廬(출부귀오려) 대궐에서 물러나 내 집에 돌아오니
靜然安且逸(정연안차일) 조용하고 편하여 마냥 한가로워라
更無客干謁(갱무객관알) 찾아와 만나자는 사람없고
時有僧問疾(시유승문질) 가끔 중이 병 문안 올뿐
家僮十餘人(가동십여인) 집에는 머슴아이 십여 명
櫪馬三四匹(력마삼사필) 마굿간에는 말이 서너 필 있네
傭發經旬臥(용발경순와) 게으름 피면 십여일을 누웠고
興來連日出(흥래연일출) 흥이 나면 매일 같이 출타하네
出遊愛何處(출유애하처) 좋아서 찾아 나가는 곳은
嵩碧伊瑟瑟(숭벽이슬슬) 푸르름이 짙은 숭산 이노라
況有淸和天(황유청화천) 더구나 편하고 맑은 날씨에
正當梳散日(정당소산일) 한가로운 계절과 겹쳤네
身閑自爲貴(신한자위귀) 몸이 한가하면 기품도 바를 것이니
何必居榮秩(하필거영질) 어찌 부귀를 누리고 높은 벼슬을 해야만 할 건가
心足卽非貧(심족즉비빈) 마음이 만족하면 가난하지 않네
豈唯金滿室(기유금만실) 집에 황금을 가득 채워야 하겠는가 ?
吾觀權勢者(오관권세자) 오늘 영화를 누리는 자들 보니
苦以身徇物(고이신순물) 물질의 노예로 살고 있으며
炙手外炎炎(자수외염염) 밖으로는 훨훨 타오르는 세도 이지만
履氷中慄慄(이빙중율율) 속은 얼음 밟듯 부들부들 떨면서
朝飢口忘味(조기구망미) 아침에는 배 고파도 입맛 없고
夕慽心憂失(석척심우실) 저녁에는 자리 잃을까 근심 걱정
但有富貴名(단유부귀명) 오직, 허상의 이름만이 있을 뿐
而無富貴質(이무부귀질) 실제로 영화는 누리지 못하노라
□ 松齋 <송재에 붙여>
非老亦非少(비로역비소) 나이가 많지도 적지도 않으니
年過三紀餘(연과삼기여) 이제 삼십년을 살았네
非賤亦非貴(비천역비귀) 천하지도 않지만 귀하지도 않으니
朝登一命初(조등일명초) 조정에 임명되어 벼슬살이를 하네
才小分易足(재소분이족) 재주가 부족하니 분수에 만족하고
心寬體長舒(심관체장서) 마음 넓으니 몸이 편하구나
充腸皆美食(충장개미식) 배 부르면 맛있는 음식이지
容膝卽安居(용슬즉안거) 육신을 들일 수 있으니 편안한 집이네
況此松齋下(황차송재하) 그리고 내 서재 송재에는
一琴數秩書(일금수질서) 거문고와 책이 있으니
書不求甚解(서불구심해) 책은 내용만 알면 되고
琴聊以自娛(금료이자오) 거문고는 기분 좋게 타며 즐기네
夜直入君門(야직입군문) 밤에는 궁궐에 들어 숙직 하고
晩歸臥吾廬(만귀와오려) 늦게 돌아와 내 초라한 집에서 자네
形骸委順動(형해위순동) 몸을 세상에 맞기니
方寸付空虛(방촌부공허) 마음이 편안해 한가롭다
持此將過日(지차장과일)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지
自然多晏如(자연다안여) 자연에 몸 맡기면 편편한 것을
昏昏復黙黙(혼혼부묵묵) 조용하고 말 없이
非智亦非愚(비지역비우) 지혜롭지도 못하지만 어리석지도 않다
□ 養拙 <어리석게 살리라>
鐵柔不爲劍(철유불위검) 쇠가 무르면 칼을 만들지 못하고
木曲不爲轅(목곡불위원) 나무가 굽으면 멍에로 쓰지 못하리
今我亦如此(금아역여차) 내가 이 모양이라
愚蒙不及門(우몽불급문)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것 같다
甘心謝名利(감심사명리) 내 모습이 이러니 명예와 이해타산 버리고
滅跡歸邱園(멸적귀구원) 전원으로 돌아가 사는 것이 나으리라
坐臥茅姿中(좌와모자중) 초가 집에 편안히 앉거나 누워서
但對琴與尊(단대금여존) 거문고 타며 술이나 마셔야지
身去韁鎖累(신거강쇄루) 세속에 갇힌 내 몸을 풀고
耳辭朝市喧(이사조시훤) 세상의 번잡한 소리 안 듣고
逍遙無所爲(소요무소위) 일 없이 한가롭고 유연하게
時窺五七言(시규오칠언) 시간 나면 도덕경을 읽으리라
無憂樂性場(무우락성장) 마음이 편하니 걱정 없어 본성이 즐겁다
寡欲淸心源(과욕청심원) 욕심 부리지 않으니 마음은 절로 맑아진다
始知不才者(시지부재자) 나는 이제 알았네
可以探道根(가이탐도근) 도의 근본 깨달아야 함을
위의 시는 陶淵明과 너무도 흡사하다.
陶淵明의 글을 보고 지었거나 혹은,
陶淵明이 죽고 난 후 그의 모습을 따라 자신도 낙향한 듯 하는 글이다.
□ 長安早春旅懷 <이른 봄 장안에 와서>
軒車歌吹喧都邑(헌거가취훤도읍) 서울은 수레와 노래 소리 시끄러워
中有一人向隅立(중유일인향우립) 한 구석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나
夜深明月卷簾愁(야심명월권렴수) 깊은 밤 발 걷고 달 보며 슬퍼했고
日暮靑山望鄕泣(일모청산망향읍) 해 떨어진 산 넘어 고향을 바라보며 울었노라
風吹新綠草芽坼(풍취신록초아탁) 봄 바람에 나뭇잎이 나부낄새 풀 싹이 트고
雨새輕黃柳條濕(우새경황유조습) 사뿐이 내리는 비에 연황색 버들가지 물오른다
此生知負少年春(차생지부소년춘) 봄을 등진 젊은 나의 인생이여
不展愁眉欲三十(부전수미욕삼십) 얼굴을 찌푸린 체 삼십이 되려 하네
□ 詠懷 <감회>
自從委順任浮沈(자종위순임부침) 본래 천명을 따르고 순리에 몸 담고자 했는데
漸覺年多功用深(점각년다공용심) 늙어 면서 수양과 한이 깊어 졌노라
面上減除憂喜色(면상감재우희색)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의 기색도 지워지고
胸中消盡是非心(흉중소진시비심) 가슴 속에는 시비를 따지는 극성도 사라졌으며
妻兒不問唯耽酒(처아불문유탐주) 가족도 잊은 체 오직 술만 마시고
冠蓋皆慵只抱琴(관개개용지포금) 벼슬도 귀찮아 거문고만 타노라
長笑靈均不知命(장소영균부지명) 굴원이 천명을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고민하고
江籬叢畔苦悲음(강리총반고비음) 물가 풀밭을 떠돌며 슬피 울던 꼴이 우습구나
□ 重賦 <과중한 세금>
厚地植桑麻(후지식상마) 땅에 뽕이나 삼을 심는 것은
所要濟生民(소요제생민) 백성을 구제하려는 목적에서 이고
生民理布帛(생민이포백) 사람들이 베 비단을 짜는 것은
所求活一身(소구활일신) 내 한 몸 잘 살게 하기 위함이리
身外充征賦(신외충정부) 쓰고 남는 것을 세금으로 바치고
上以奉君親(상이봉군친) 임금에게 올리게 마련이지만
國家定兩稅(국가정양세) 나라에서 양세법을 제정한 것도
本意在愛人(본의재애인) 본래는 백성을 사랑하고자 해서 리라
厥初防其淫(궐초방기음) 처음에는 세금의 많은 징수를 금하는
明勅內外臣(명칙내외신) 칙서를 모든 신하에게 밝혔으며
稅外加一物(세외가일물) 정해진 외에 하나라도 더 거두면
皆以枉法論(개이왕법론) 법을 어겼다 하여 단죄를 하였거늘
奈何歲月久(내하세월구)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貪吏得因循(탐리득인순) 탐관 오리들이 차츰 악랄 해져서
浚我以求寵(준아이구총) 우리 백성을 조어 총애를 얻고자
斂索無冬春(렴색무동춘) 계절도 없이 마구 걷어 가네
織絹未成匹(직견미성필) 잔 명주 미처 한 필도 못되고
繅絲未盈斤(소사미영근) 고치 푼 실 한 광주리도 못 되거늘
里胥迫我納(이서박아납) 마을의 세리는 바치라고 야단이고
不許蹔逡巡(불허잠준순) 빨리 내라고 들볶으니
歲募天地閉(세모천지폐) 설이라 하늘과 땅도 닫히고 막힌 듯
陰風生破村(음풍생파촌) 차가운 한풍이 마을에 부네
夜深煙火盡(야심연화진) 밤이 깊어 불씨와 연기도 죽었고
霰雪白紛紛(산설백분분) 힌 싸라기 눈이 조금씩 날리네
幼者形不蔽(유자형불폐) 어린 아들은 옷 걸치지 못하고
老者體無溫(노자체무온) 늙은이는 몸에 온기가 없네
悲喘與寒氣(비천여한기) 한탄의 숨결과 찬 바람이 함께
倂入鼻中辛(병입비중신) 코를 찌르니 쓰리고 시큼하여라
昨日輸殘稅(작일수잔세) 어제 나머지 세금을 바치느라
因窺官庫門(인규관고문) 관부의 창고 안을 힐끔 봤더니
繒帛如山積(증백여산적) 비단과 피륙이 산더미 같이 쌓였고
絲絮似雲屯(사서사운둔) 명주실이 구름같이 뭉쳤네
號爲羨餘物(호위선여물) 이것들이 이른바 잉여 물품으로
隨月獻至存(수월헌지존) 매달 임금에게 바쳐졌을 것이니
奪我身上暖(탈아신상난) 바로 우리 백성을 헐벗게 하여
買入眼前恩(매입안전은) 임금의 은총을 얻고자 한 것이니
進入瓊林庫(진입경림고) 천자의 창고에 수납되어 쌓인 채
歲久化爲塵(세구화위진) 오랜 세월에 썩어 먼지가 되리
誰家起甲第(수가기갑제) 갑부의 집 화려한 저택이 섰다
朱門大道邊(주문대도변) 붉은 대문은 큰 길가로 뚫려 있고
豊屋中櫛比(풍옥중즐비) 우람한 집채들이 빗살같이 늘어 섰다
高牆外廻環(고장외회환) 높은 담장을 밖으로 둘러 쳐 놓았네
纍纍六七堂(류류육칠당) 겹겹이 솟은 여섯 일곱 채의 건물
棟宇相連延(동우상련연) 우람한 대들보가 줄지어 이어졌노라
一堂費百萬(일당비백만) 한 채에 백만 금이 넘을 집들이
鬱鬱起靑煙(울울기청연) 뭉게뭉게 푸른 연기가 피어 오르는데
洞房溫且淸(동방온차청) 따듯 하고도 시원하게 마련된 방에는
寒暑不能干(한서불능간) 추위나 더위도 덤비지 못하고
高堂虛且逈(고당허차형) 높은 집은 앞이 멀리까지 트여
坐臥見南山(좌와견남산) 앉으나 누우나 종 남산이 보이노라
繞廊紫藤架(요랑자등가) 회랑 둘레에 자등이 시렁에 얹혔고
夾砌紅藥欄(협체홍약란) 섬돌 끼고 붉은 작약 울타리를 이뤘네
攀枝摘櫻桃(반지적앵도) 가지를 휘어잡고 앵두를 딸 수 있고
帶花移牡丹(대화이모란) 꽃 핀 채로 모란을 이삭 하여 놓았네
主人此中坐(주인차중좌) 이 집 중앙에 앉아 있는 주인은
十載爲大官(십재위대관) 십년 동안 고관대작을 지냈으므로
廚有臭敗肉(주유취패육) 부엌에는 고기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庫有貫朽錢(고유관후전) 창고에는 녹슨 돈이 가득하다
誰能將我語(수능장아어) 내 말대로 물어 볼 사람 누구인가 ?
問爾骨肉間(문이골육간) 그대에게 묻노니 피를 나눈 형제간에
豈無窮賤者(기무궁천자) 반드시 가난하고 빈천한 자 있겠거늘
忍不求饑寒(인불구기한) 모질게도 그들에게 나누지 아니하고
如何奉一神(여하봉일신) 어이하여 네 한 몸을 위해
直欲保千年(직욕보천년) 천년만년 호강 누리고자 하느냐 ?
不見馬家宅(불견마가택) 그대 보지 못했느냐 ? 마씨 일가도
今作奉誠園(금작봉성원) 몰락하여 봉성원으로 변해 버렸음을 !
□ 輕肥 <경구비마>
意氣驕滿路(의기교만로) 의기에 차서 교만 떠는 폼이 길에 넘치고
鞍馬光照塵(안마광조진) 말 안장 눈부신 빛 길 먼지조차 보이네
借問何爲者(차문하위자) 누구냐고 물으니
人稱是內臣(인칭시내신) 내신일거라고 대답하네
朱紱皆大夫(주불개대부) 붉은 인수끈을 찬 자들은 모두 대부이고
紫綬或將軍(자수혹장군) 보라빛 인끈 찬 자들은 장군이 겠지
誇赴軍中宴(과부군중연) 자랑스럽게 군중의 잔치에 가는 길
走馬去如雲(주마거여운) 구름같이 떼를 지어 말을 달리네
尊罍溢九醞(존뢰일구온) 술잔에는 무르익은 술이 넘치고
水陸羅八珍(수륙라팔진) 산해의 온갖 성찬 다 마련 되었네
果擘洞庭橘(과벽동정귤) 과일로는 동정의 귤을 까서 먹고
膾切天池鱗(회절천지인) 회로는 천지의 생선을 쳐서 먹네
食飽心自若(식포심자약) 배불리 먹으니 마음 마냥 편하고
酒酣氣益振(주감기익진) 술이 취하니 기세가 더욱 사납네
是歲江南旱(시세강남한) 올해에도 강남에서는 기근이 들어
衢州人食人(구주인식인) 구주에서는 사람을 잡아 먹는다네
□ 歌舞 <춤과 노래>
秦城歲云暮(진성세운모) 세모가 다가온 장안성에
大雪滿皇州(대설만황주) 큰 도시에 많은 눈이 내리자
雪中退朝者(설중퇴조자) 눈이 내리는데 대궐에서 나오는 사람들
朱紫盡公侯(주자진공후) 주불이나 자수를 띤 높은 벼슬하는 사람들이다
貴有風雪興(기유풍설흥) 귀족들은 바람과 눈을 맞으며 들떠 있고
富無饑寒憂(부무기한우) 부자들은 가난의 걱정이 없다
所營唯第宅(소영유제택) 오직 크고 화려한 집을 짓고
所務在追遊(소무재추유) 원하는 것은 향락으로 놀고 먹기만 하는구나
朱門車馬客(주문거마객) 붉고 큰 대문에는 수레 탄 손님 들이 북적이고
紅燭歌舞樓(홍촉가무루) 불 밝힌 방에는 춤추고 노래하며
歡酣促密坐(환감촉밀좌) 즐거워 하며 서로들 부둥켜 앉고
醉暖脫重裘(취난탈중구) 취기가 오르자 걷 옷을 벗어 던지며 난잡하다
秋官爲主人(추관위주인) 오늘의 주인은 사법관이고
廷尉居上頭(정위거상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또한 법관들이며
日中爲樂飮(일중위락음) 대낮부터 취하여 환락을 벌이며
夜半不能休(야반불능휴) 밤이 깊어도 끝 날줄 모르더라
豈知閿鄕獄(기지문향옥) 문향에 있는 감옥의 죄수가
中有凍死囚(중유동사수) 추위에 얼어 죽은들 어찌 알겠는가 ?
□ 繚綾 <비단 옷>
繚綾繚綾何所似(요릉요릉하소사) 요릉비단 요릉비단을 무엇과 같다고 할까
不似羅綃與紈綺(불사라초여환기) 엷은 색 비단이나 흰깁 무늬 비단 같지도 않으며
應似天台山上明月前(응사천태산상명월전) 상명월전 흡사 천대산 위에 뜬 명월에 비친
四十五尺瀑布泉(사십오척폭포천) 사십오척의 폭포수 같다 고나 할까 ?
中有文章又奇絶(중유문장우기절) 기이하고 절묘한 무늬는
地鋪白煙花簇雪(지포백연화족설) 흰 연기가 피는 바탕에 눈꽃이 엉킨 듯
織者何人衣者誰(직자하인의자수) 누구는 짜고 누구는 입는가 ?
越溪寒女漢宮姬(월계한녀한궁희) 월계의 가난한 여인이 짜고 한 나라 궁녀들이 입는다
去年中使宣口勅(거년중사선구칙) 지난 해 궁녀의 사신이 구두로 칙명을 전하여
天上取樣人間織(천상취양인간직) 궁중의 의양 대로 그들이 짜게 한 것이니
織爲雲外秋雁行(직위운외추안행) 비단의 무늬는 가을 기러기가 구름 밖을 날아가고
染作江南春水色(염작강남춘수색) 염색은 봄 든 강남의 강물 빛 과도 같게 했으며
廣裁衫袖長製裙(광재삼수장제군) 저고리 소매 폭 넓게 마르고 치마길이 길게 만들어
金斗熨派刀剪紋(금두위파도전문) 금 인두로 주름을 펴고 무늬 따라 가위질 하니
異彩奇文相隱映(이채기문상은영) 이채롭고 기이한 무늬들이 서로 어울려 화려하고
轉側看花花不定(전측간화화부정) 각도 따라 색다른 꽃 모양같이 보이더라
昭陽舞人恩正深(소양무인은정심) 소양전의 무녀들은 마냥 은총을 받은지라
春衣一對直千金(춘의일대직천금) 봄 옷 일습의 값이 천금을 넘는 고가이거늘
汗沾粉汚不再著(한첨분오불재저) 땀에 젖고 분에 얼룩지면 두 번 다시 입지 않으며
曳土蹼阿無惜心(예토복아무석심) 땅에 끌리고 흙에 밟히며 아까운 줄도 모르더라
繚綾織成費功績(료릉적성비공적) 요릉비단 짜는데 수고 많고
莫比尋常繒與帛(막비심상증여백) 보통 비단과는 비교가 않되노라
絲細繰多女手疼(사세조다여수동) 가는 실을 비비 꼬아 짜느라 織女들 손이 아프고
札札千聲不盈尺(찰찰천성불영척) 찰칵찰칵 베틀을 천번 울려도 한자 길이가 못되네
昭陽殿裏歌舞人(소양전리가무인) 소양전 아래서 노래하고 춤추는 궁녀들이
若見織時應也惜(약견직시응야석) 짜는 고생 볼 것 같으면 의당히 아까운 줄 알리라.
□ 效陶潛體詩 <도연명의 시를 본뜨다>
朝飮一杯酒(조음일배주) 아침에 한잔의 술 마시니
冥心合元化(명심합원화) 그윽한 마음 천지 조화에 어울리네
兀然無所思(올연무소사) 의연한 자세로 아무런 야심도 없이
日高尙閒臥(일고상한와) 해가 높거늘 아직도 한가롭게 누웠네
暮讀一卷書(모독일권서) 해지면 한 권의 책을 읽고
會意如嘉話(회의여가화) 오랜 벗과 말 하 듯 뜻이 통하네
欣然有所遇(흔연유소우) 만날 사람 만난 듯 기쁘고
夜深猶獨坐(야심유독좌) 밤이 깊어도 홀로 책을 보네
又得琴上趣(우득금상취) 또한 거문고에 흥취 느끼고
按絃有餘睱(안현연유하) 줄을 타니 더욱 한가롭구나
復多詩中狂(부다시중광) 시 속에서 마냥 미친 듯이
下筆不能罷(하필불능파) 붓을 들어 휘 갈기며 그칠 줄 모르네
唯玆三四事(유자삼사사) 오직 이런 시간 보내며
持用度晝夜(지용도주야) 낮과 밤을 지냈노라
所以陰雨中(소이음우중) 음산한 장마 철에도
經旬不出舍(경순불출사) 십여 일 두문 불출 했으며
始悟獨往人(시오독왕인) 비로소 알았노라 고독하게 사는 인간만이
心安時亦過(심안시역과) 마음 편하게 세월 보낼 수 있음을
□ 放言 <방언>
泰山不要欺毫末(태산불효기호말) 높고 큰 태산은 작은 티끌을 속이지 않고
顔子無心贍老彭(안자무심섬로팽) 요절한 안자는 장수했던 노팽을 부러워 않네
松樹千年終是휴(송수천년종시휴) 천년자란 소나무도 결국은 시들어 죽고
槿花一日自爲榮(근화일일자위영) 하루 피는 무궁화도 제 멋의 영화를 누리네
何須戀世常憂死(하수연세상우사) 어찌, 현세에만 연연해 죽기를 두려워 하랴
亦莫嫌身漫厭生(역막혐신만염생) 육신과 인생을 함부로 헛되이 하지 마라
生死去來都是幻(생사거래도시환) 생사의 일이 모두 한바탕 꿈이거늘
幻人哀樂繫何情(환인애락계하정) 꿈에 사는 인간이 어찌, 애환의 정에 매이랴.
□ 婦人苦 <여자의 괴로움>
蟬鬢加意梳(선빈가의소)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올리고
蛾眉用心掃(아미용심소) 고운 눈썹 정성스럽게 다듬는다
幾度曉粧成(기도효장성) 새벽에 화장 한 것이 벌써 몇 번인가
君看不言好(군간불언호) 신랑은 보고도 예쁘다 말이 없고
妾身重同穴(첩신중동혈) 죽으면 한 무덤에 묻히길 바라지만
君意輕偕老(군의경해로) 남편은 백년해로 우습게 생각한다
惆悵去年來(추창거년래) 오래 전부터 원망스럽고 슬프지만
心知未能道(심지미능도) 마음에만 쌓아 두고 말 못했네
今朝一開口(금조일개구) 오늘 아침에야 처음으로 말을 하니
語少意何深(어소의하심) 짧은 말이지만 깊게 생각하여
願引他時事(원인타시사) 원망하게 한 지난날들
移君此日心(이군차일심) 식어 버린 남편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人言夫婦親(인언부부친)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부 사이는
義合如一身(의합여일신) 일심동체로 서로 아기고 사랑하라지만
及至死生際(급지사생제)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으면
何曾苦樂均(하증고락균) 그 고통을 어찌 혼자 감당하겠는가
婦人一喪夫(부인일상부) 남편이 먼저 죽고 나 혼자 되면
終身守孤孑(종신수고혈) 내내 외롭게 살이야 할 것이니
有如林中竹(유여림중죽) 그 신세 숲 속의 대나무 같아
忽被風吹折(홀피풍취절) 갑자기 비바람에 부러지리라
一折不重生(일절불중생) 한번 부러지면 다시는 설 수 없을 것이니
枯死猶抱節(고사유포절) 말라 죽더라도 정절을 지켜야 하네
男兒若喪婦(남아약상부) 남자는 아내가 죽으면
能不暫傷情(능불잠상정) 마음에 상처야 있겠지만
應似門前柳(응사문전류) 마치 문전의 버들과 같이
逢春易發榮(봉춘이발영) 봄이 오면 다시 잎이 피고
風吹一枝折(풍취일지절) 바람 불어 가지 하나 부러지면
還有一枝生(환유일지생) 또 가지 하나 생겨나네
爲君委曲言(위군위곡언) 남편에게 간곡히 하고 싶은 말은
願君再三聽(원군재삼청) 내가 한 말을 꼭 마음에 새겨서
須知婦人苦(수지부인고) 부디 아내의 고통 알고
從此莫相輕(종차막상경) 지금부터라도 아내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라
□ 賦得古原草送別 <부득고원초송별>
離離原上草(이이원상초) 언덕 위의 무성한 저 잡초는
一歲一枯榮(일세일고영) 계절 지나면 지고 다시 자라네
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 봄바람 불면 다시 자라네
遠芳侵古道(원방침고도) 아득한 향기 옛길에 퍼지고
晴翠接荒城(청취접황성) 옛 성터엔 푸른빛 천지구나
又送王孫去(우송왕손거) 이 순간 그대를 보내고 나면
悽凄滿別情(처처만별정) 이별의 정만 잡초같이 무성하리라
□ 落花古調賦 <지는 꽃잎을 보며>
留春春不駐(유춘춘부주) 붙들 수 없는 봄이지만 오래 머물렀으면
春歸人寂寞(춘귀인적막) 봄이 가면 남은 이만 쓸쓸하니
厭風風不定(염풍풍부정) 걷을 수 없는 바람은 그만 불고라
風起花蕭奈(풍기화소나) 무수한 꽃잎이 지니 봄이 가는 구나
□ 村 夜 <시골의 밤>
霜草蒼蒼蟲切切(상초창창충절절) 서리 내린 풀 숲에 벌레소리 처량하구나
村南村北行人絶(촌남촌북행인절) 마을의 남쪽과 북쪽에는 인적이 끊겼네
獨出門前望野田(독출문전망야전) 홀로 문을 나서 논 밭을 바라보니
月明蕎麥花如雪(월명교맥화여설) 하얀 메밀꽃이 눈 내린 것 같구나
□ 空閨怨 <외로운 아낙네>
寒月沈沈洞房靜(한월침침동방정) 차가운 달빛은 고요한 방 깊이 찾아 들고
眞珠簾外梧棟影(진주렴외오동영) 주렴엔 오동나무 그림자 어리네
秋霜欲下手先知(추상욕하수선지) 서리 내리려는 것을 손이 먼저 아는지
燈底栽縫剪刀冷(등저재봉전도냉) 등불 아래 바느질 하는 가위가 차다
□ 對酒 五首中 其一
巧拙賢愚相是非(교절현우상시비) 어리석다 현명하다 서로 시비를 가리지만
何如一醉盡忘機(하여일취진망기) 흠뻑 취하여 속세의 더러움을 잊음이 어떠한가
君知天地中寬笮(군지천지중관책) 그대 아는가 천지는 끝 없이 넓고도 좁아
鵰咢鸞皇各自飛(조악난황각자비) 독수리 물수리 난새 봉황새 제멋대로 나는 세상
□ 對酒 其 二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뿔 위에 싸운들 무엇하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부싯돌 번쩍이듯 순간에 사는 몸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부자든 가난하든 주어진 대로 즐겁거늘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입 벌려 웃지 않으면 바보로다
□ 對酒 其 三
丹砂見火去無跡(단사견화거무적) 단약은 불 만나면 흔적없이 사라지고
白髮泥人來不休(백발니인내불휴) 백발은 늙어 가는 내게 와서 쉬지를 않네
賴有酒仙相暖熱(뢰유주선상난열) 다행히 술이 있어 서로 좋아 하였더니
松喬醉卽到前頭(송교취즉도전두) 마시고 취하면 신선들까지 나타나네.
□ 對酒 其 四
百歲武多時壯健(백세무다시장건) 백살을 살아도 건강한 날이 몇 일인가 ?
一春能幾日晴明(일춘능기일청명) 봄이 좋은 계절이지만 맑은 날 몇일 인가
相逢且莫推辭醉(상봉차막추사취) 서로 만났으니 사양말고 마음껏 마시며
聽唱陽關第四聲(청창양관제사성) 이별의 노래 양관곡이나 들어보세
□ 對酒 其 五
昨日低眉問疾來(작일저미문질래) 어제는 병문안 하러 와서 걱정하더니
今朝收淚弔人回(금조수루조인회) 오늘 아침엔 눈물 훔치며 조문하고 돌아가네
眼前流例君看取(안전유예군간취) 눈 앞에서 일어난 일 그대도 봐 알거늘
且遣琵琶送一杯(차견비파송일배) 이별노래 놔두고 술 하잔 올리시게
□ 不出門
不出門來又數旬(불출문래우수순) 대문 밖 안나 간지 여러 날이 되었네
將何銷日與誰親(장하소일여수친) 무슨 재미로 소일하고 누구와 벗하는가
書卷展時逢古人(서권전시봉고인) 책을 읽으면서 옛 사람을 만나고
自靜其心延壽命(자정기심연수명) 스스로 마음을 맑게 하면 명이 길어지네
無求於物長精神(무구어물장정신) 욕심을 버리면 정신도 맑고 높아지니
能行便是眞修道(능행편시진수도) 바른 수도란 쉽고 편한 것을
何必降魔調伏身(하필강마조복신) 마귀, 귀신 쫓는다 어찌 그리 소란한가
□ 感興
吉凶禍福有來由(길흉화복유래유) 길흉 화복은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니
但要深知不要憂(단요심지불요우) 원인을 알되 결과를 겁내지 마라
只見火光燒潤屋(지견화광소윤옥) 불이 나서 큰 집을 태우기는 하여도
不聞風浪覆虛舟(불문풍랑복허주) 바람은 속이 빈 배를 뒤집지는 못한다
名爲公器無多取(명위공기무다취) 명예는 여러 사람의 것이니 많이 탐하지 말라
利是身災合少求(이시신재합소구) 이득은 몸의 재앙이니 적당히 탐하여라
雖異匏瓜難不食(수이포과난불식) 사람은 표주박과 달라서 안 먹을 수 없지만
大都食足早宜休(대도식족조의휴) 배가 부르면 그만 먹어야지.
□ 歎老 <세월을 한탄하며>
晨興照靑鏡(신흥조청경)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얼굴 비워 보니
形影兩寂寞(형영양적막) 몰골이 처량하다
萬化成於漸(만화성어점) 만물이 변하듯
漸怨着不覺(점원착불각) 나도 모르게 늙어만 가는구나
但恐鏡中顔(항공경중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今朝老於昨(금조노어작) 어제 보다 더욱 늙었다
吾聞善醫者(오문선의자) 내가 알기에 편작이
今古稱扁名(금고칭편명) 뛰어난 의사라
萬病皆可治(만병개가치) 모든 병을 다 고친다 하나
唯無治老樂(유무치노락) 늙지 않고 죽지 않을 약을 만들 수 있으랴
□ 立碑 <비석 세우기>
勛德旣下衰(훈덕기하쇠) 공덕과 행실이 미약하면
文章亦陵夷(문장역릉이) 그것을 기록한 글도 없애야지.
但見山中石(단견산중석) 산속의 돌에 불과한 것을
立作路旁碑(립작로방비) 길가의 비석으로 세워서는
銘勳悉太公(명훈실태공) 태공의 공훈을 새기고
敍德皆中尼(서덕개중니) 공자의 덕행을 적다니
復以多爲貴(부이다위귀) 또 글자가 많아야 좋다고
千言直萬貲(천언치만자) 만금이나 들여 일천자라
爲文彼何人(위문피하인) 비문을 지은 자 누구일까 ?
想見下筆時(상견하필시) 보아하니 비문을 지으면서
但欲愚者悅(단욕우자열) 어리석은 사람들의 기쁨만 생각했지
不思賢者嗤(불사현자치) 현자들의 비웃음은 생각지 못했으리
豈獨賢者嗤(기독현자치) 어찌 현자들만 비웃겠는가 ?
仍傳後代疑(잉전후대의) 후대까지 전해지며 욕하리라
古石蒼苔字(고석창태자) 오래된 돌에 이끼 낀 글자가
安知是愧詞(안지시괴사) 어찌 부끄러운 말을 알겠는가 ?
我聞望江縣(아문망강현) 망강현의 국령은
麴令撫惸嫠(국령무경이) 외로운 백성들을 위로하며
在官有仁政(재관유인정) 재직 시에 인정을 베풀었으나
名不聞京師(명불문경사) 명성은 경사에 들리지 않았다
身歿欲歸葬(신몰욕귀장) 죽은 후 고향으로 운구하려 했으나
百姓遮路岐(백성차로기) 백성들이 그 길을 가로막고
攀轅不得歸(반원부득귀) 수레 끌채를 잡고 못 가게 하자
留葬此江湄(류장차강미) 망강가에 그를 묻었다
至今道其名(지금도기명) 지금도 그 이름을 말하면
男女涕皆垂(남녀체개수) 모든 사람들이 눈물 흘리니
無人立碑碣(무인립비갈) 비석을 세운 사람 없어도
唯有邑人知(유유읍인지) 마을 사람들만은 그의 공덕을 알고 있다
□ 問劉十九 <눈 내릴 것 같은 저녁>
綠蟻新醅酒(녹의신배주) 새로 담근 술 익어서 거품 오르고
紅泥小火爐(홍니소화로) 작은 화로에는 숯불이 붉게 타네
晩來天欲雪(만래천욕설) 눈 내리는 이 밤에
能飮一杯無(능음일배무) 술 한 잔 해야지
□ 慈烏夜啼 <밤에 우는 까마귀>
慈烏失其母(자오실기모) 까마귀 새끼가 어미를 잃고
啞啞吐哀音(아아토애음) 슬픈 울음을 토하며 우네
晝夜不飛去(주야부비거) 밤 낮으로 날지도 않고
經年守故林(경년수고림) 해가 저도 둥지를 지키고 있구나
夜夜夜半啼(야야야반제) 한 밤중에도 울어
聞者爲沾襟(문자위첨금) 듣는 이의 눈시울을 적신다
聲中如告訴(성중여고소) 깊은 사연을 담은 듯한 울음은
未盡反哺心(미진반포심) 필시, 못 다한 그리움의 애절한 마음
百鳥豈無母(백조개무모) 새마다 어찌 어미가 없겠는가
爾獨哀怨深(이독애원심) 유독 너만 애절한 마음이 깊구나
應是母慈重(응시모자중) 어미의 깊은 사랑을 받았으니
使爾悲不任(사이비부임) 슬픔을 아는 구나
昔有吳起者(석유오기자) 옛날 오기라는 자는
母歿喪不臨(모몰상불임) 부모가 죽어도 가지 않았다는데
哀哉若此輩(애재야차배) 슬프구나 그 같은 무리들은
其心不如禽(기심부여금) 그 마음이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慈烏彼慈烏(자오피자오) 자애로운 새끼 까마귀
鳥中之曾參(조중지증삼) 새 중에 효자라네
□ 勉閒遊 <한가롭게 노닐다>
天時人事常多苦(천시인사상다고) 삶은 언제나 고난이 많아
一歲春能幾處遊(일세춘능기처유) 일년에 봄은 한번, 그 가운데 몇일 놀 수 있는가
不是塵埃便風雨(불시진애편풍우) 먼지 끼지 않으면 비 바람 불고
若非疾病卽非憂(약비질병즉비우) 질병 아니면, 근심과 걱정에 시달리네
貧窮心苦多無興(빈궁심고다무흥) 가난이 가슴 아파 마음에 흥이 안 나고
富貴身忙不自由(부귀신망부자유) 돈이 많으면 몸이 바빠 놀 시간이 없네
唯有分司官恰好(유유분사관흡호) 비록 작은 벼슬 나에게 적당하니
閒遊雖老未能休(한유수로미능휴) 늙었으나 한가로이 여유를 즐겨야지.
□ 母別子 <모자의 이별>
母別子(모별자) 어미는 자식을 이별하고
子別母(자별모) 자식은 어머니와 헤어지네
白日無光哭聲苦(백일무광곡성고) 태양도 빛을 잃어 곡소리 처절하다
關西驃騎大將軍(관서표기대장군) 관서의 표기대장군은
去年破虜新策勳(거년파로신책훈) 오랑캐를 무찌르고 큰 공을 세워서
勅賜金錢二百萬(칙사금전이백만) 천자에게 이백만량 상을 받아
洛陽迎得如花人(낙양영득여화인) 꽃 같은 여인을 낙양에서 얻었다네
新人迎來舊人棄(신인영래구인기) 새 여인 얻고는 본 처를 버리니
掌上蓮花眼中刺(장상연화안중자) 손바닥의 연꽃이듯 눈에 가시이듯
迎新棄舊未足悲(영신기구미족비) 새부인 얻어 버림받음 견디겠으나
悲在君家留兩兒(비재군가유양아) 집에 남겨진 두 아이를 어찌하리
一始扶行一初坐(일시부행일초좌) 겨우 걷고, 앉는데
坐啼行哭牽人衣(좌제행곡견인의) 아이들 울며 불며 매달리네
以汝夫婦新燕婉(이여부부신연완) 그대들 새로이 부부 된 덕에
使我母子生別離(사아모자생별리) 우리 모자 생이별하게 되었네
不如林中烏與鵲(불여임중오여작) 숲 속의 까마귀나 까치만도 못하구나
母不失雛雄伴雌(모불실추웅반자) 어미 새끼 함께 하며 암수 짝하거늘
應似園中桃李樹(응사원중도이수) 우리 모자 뜰 안 복숭아 오얏 같이
花落隨風子在枝(화락수풍자재지) 바람에 꽃잎 지고 열매만 남는구나
新人新人聽我語(신인신인청아어) 새댁이여 내 말을 잘 들어시오
洛陽無限紅樓女(낙양무한홍루여) 낙양에는 홍루의 미인이 수없이 많아
但願將軍重立功(단원장군중입공) 장군이 다시 공을 세우면
更有新人勝於汝(갱유신인승어여) 그대보다 더 예쁜 사람 얻을 것이다
□ 太行路 <험한 인생길>
太行之路能摧車(태행지로능최거) 험한 태행산 길 수레바퀴 뒤틀려도
若比人心能坦途(약비인심능탄도) 사람 마음보다 고르다네
巫峽之水能覆舟(무협지수능복주) 거친 계곡 물살이 배를 뒤집어도
若比人心是安流(약비인심시안류) 사람 마음보다는 덜하다네
人心好惡苦不常(인심호악고불상) 사람마음 수시로 변하니
好生毛羽惡生瘡(호생모우악생창) 좋으면 안아 주고 싫으면 멀어지네
與君結髮未五載(여군결발미오재) 당신과 결혼한 지 오년도 못 가서
豈期牛女爲參商(기기우녀위삼상) 정 많던 우리사이 이렇게 멀어지다니
古稱色衰相棄背(고칭색쇠상기배) 옛말에 늙으면 서로가 등진다고
當時美人猶怨悔(당시미인유원회) 옛 미인들 원망하고 후회했지만
何況如今鸞鏡中(하황여금난경중) 어찌된 사연인지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妾顔未改君心改(첩안미개군심개) 주름도 없건만 당신 마음 변했네
爲君薰衣裳(위군훈의상) 당신 위해 향수를 뿌렸지만
君聞蘭麝不馨香(군문란사불형향) 당신은 향수냄새도 모르고
爲君盛容飾(위군성용식) 당신 위해 화려하게 꾸며도
君看金翠無顔色(군간금취무안색) 보고도 말이 없네
行路難(행로난) 인생 길은 험하여
難重陳(난중진) 그 어려움 말도 못해
人生莫作婦人身(인생막작부인신) 세상에 여자로 태어 나지 마라
百年苦樂由他人(백년고락유타인) 백년의 고락이 남자에게 달렸다네
行路難(행로난) 인생 길 험하기가
難於山(난어산) 산보다 험난하네
險於水(험어수) 물보다 험난하네
不獨人間夫與妻(부독인간부여처) 오직 부부사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네
近代君臣亦如此(근대군신역여차) 요즈음 군신간도 마찬가지
君不見(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였나
左納言右納史(좌납언우납사) 임금의 좌우 측근들을
朝承恩暮賜死(조승은모사사) 아침에 총애 받고 저녁에 사약 받네
行路難(행로난) 우리 인생이 험한 것은
不在水(부재수) 물길에 있지 않고
不在山(부재산) 산길에 있지 않고
只在人情反覆間(지재인정반복간) 오직 변덕스러운 사람 마음 일세
□ 長恨歌 <긴 한의 노래>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한 황제는 색을 즐겨 아름다운 여자를 찾았으나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오랜 세월 찾았지만 얻을 수 없었네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양씨 가문에 아리따운 딸이 있어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집안에만 있어 누구도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이 있는지라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 뽑혀 황제에게 부름을 받네
回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 한번 눈 웃음지면 보는 이의 근심이 사라지고
六宮粉黛無顔色(육궁분대무안색) 치장한 궁궐 미인들도 고개를 숙이네
春寒賜浴華淸池(춘한사욕화청지) 봄 추위에 화청지 목욕하니
溫泉水滑洗凝脂(온천수골세응지) 온천 부드러운 물에 매끈한 몸을 씻네
侍兒扶起嬌無力(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 시중에도 화려한 교태 자아내고
始是新承恩澤時(시시신승은택시) 그 때부터 황제 사랑 받았다네
雲鬢花顔金步搖(운빈화안금보요) 구름 같은 머리, 꽃 같은 얼굴, 흔들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 부용휘장 안에 사랑하는 봄 밤은 깊어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짧은 봄 밤을 한탄하며 해가 높이 솟아야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부조조) 황제는 아침 조회를 보지 못하네
承歡侍宴無閑暇(승환시연무한가) 총애로 연회에 바쁘니
春從春游夜專夜(춘종춘유야전야) 봄에는 봄 연회에 밤에는 사랑에 취하네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후궁에 아리따운 미녀 삼천이 있지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삼천 명이 받을 사랑 그녀 혼자 받네
金屋粧成嬌侍夜(금옥장성교시야) 황금 방에 단장하고 교태로 사랑을 나누네
玉樓宴罷醉和春(옥루연파취화춘) 옥루 잔치 끝나면 봄 향기에 취하고
姉妹弟兄皆列士(자매제형개열사) 형제들 모두에게 영지를 내려 주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그들 가문에 영광을 누리네
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이러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을 선호하니
驪宮高處入靑雲(여궁고처입청운)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고
仙樂風飄處處聞(선낙풍표처처문) 선악은 바람 따라 흐르네
緩歌慢舞凝絲竹(완가만무응사죽) 노래는 느리고, 춤은 나른 해, 여운 긴 가락에
盡日君王看不足(진일군왕간부족) 황제는 하루 종일 넋 잃고 빠져 있네
漁陽鼙鼓動地來(어양비고동지내) 그때, 울리는 전고 소리
驚破霓裳羽衣曲(경파예상우의곡) 놀라서 예상곡을 멈추게 하네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 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행) 수천수만 군사들은 서남으로 흩어지네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행복지) 천자의 기 휘날리며 가다 서고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도성문 서쪽 백여리 마외역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부발무나하) 양귀비 처결하라 군사들이 외치니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양귀비는 몸 뒤틀며 군마 앞에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땅에 떨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군왕엄면구부득) 황제도 얼굴 가린 채 어쩌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루상화류)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 일고 싸늘한 바람이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 구름 끼인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縈
峨嵋山下少人行(아미산하소인항) 아미산 아래에는 인적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정기무광일색박)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蜀江水碧蜀山靑(촉강수벽촉산청)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조석으로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항궁견월상심색) 궁궐에서 달 보며 마음을 달래네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령장단성) 밤비 속에 들려오는 말 방울 소리
天旋地轉回龍馭(천선지전회룡어) 난이 평정되어 황제가 돌아오는 길
到此躊躇不能去(도차주저부능거)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마외파하니토중) 양귀비 쓰러져 죽은 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부견옥안공사처)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흔적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군신상고진첨의) 황제와 신하가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동망도문신마귀)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기니
歸來池苑皆依舊(귀내지원개의구) 돌아온 황궁의 정원은 변함이 없건만
太液芙蓉未央柳(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부용여면류여미)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이라
對此如何不淚垂(대차여하불루수) 이들을 대하고 눈물을 흘리네
春風桃李花開日(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 살구꽃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추우오동엽낙시) 가을비에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이 우거졌네
落葉滿階紅不掃(낙섭만계홍부소)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어 낼 사람 없어
梨園子弟白發新(이원자제백발신)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무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초방아감청아노)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초然(석전형비사초연)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고등도진미성면) 등불에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깊을 알고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원앙와냉상화중) 원앙 같은 기와에 서리꽃이 피웠구나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혼자 덮는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헤어진지 벌써 몇 해인가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내입몽) 꿈에서 혼백마저 만날 수 없네
臨邛道士鴻都客(임공도사홍도객) 임공의 도사가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능이정성치혼백)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기에
爲感君王輾轉思(위감군왕전전사) 양귀비 생각에 잠 못 드는 황제를 위해
遂敎方士殷勤覓(수교방사은근멱)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배공어기분여전)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승천입지구지편)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상궁벽낙하황천) 위로는 극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양처망망개부견) 두 곳 모두 아득할 뿐 찾을 길이 없다
忽聞海上有仙山(홀문해상유선산) 그때,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俵緲間(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누각영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기중작약다선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玉眞(중유일인자옥진)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설부화모삼차시) 흰 살결 고운 얼굴 양귀비를 닮았다 하네
金闕西廂叩玉扃(금궐서상고옥경)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 소옥시켜 쌍성이게 알리니
聞道漢家天子使(문도한가천자사)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듣고
九華帳里夢魂驚(구화장리몽혼경) 꿈인 듯 깨어나 혼백도 놀란 듯
攬衣推枕起徘徊(남의추침기배회) 일어나 옷 들고 서성이니
珠箔銀屛迤邐開(주박은병이이개)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며 들어가네
雲髻半偏新睡覺(운계반편신수각) 잠에서 깬 듯 흐트러진 머리
花冠不整下堂來(화관부정하당내)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왔네
風吹仙袂飄飄擧(풍취선메표표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유사예상우의무) 예상곡을 추던 그 모습
玉容寂寞淚欄干(옥용적막누난간)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얼굴에 눈물이 방울지니
梨花一枝春帶雨(이화일지춘대우) 활짝 핀 배꽃 봄 비에 젖은 듯
含情凝睇謝君王(함정응제사군왕) 정어린 눈길 돌려 황제에 말 하니
一別音容兩渺茫(일별음용량묘망)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보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부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흙 먼지 뿐
唯將舊物表深情(유장구물표심정) 오래 지닌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전합금채기장거)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 하네
釵留一股合一扇(채류일고합일선) 비녀는 반 쪽씩 상자는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채벽황금합분전)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단교심사금전견)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천상인간회상견)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만나라네
臨別殷勤重寄詞(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리라.
□ 比翼鳥와 連理枝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의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의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한다.
비목어는 눈이 한쪽에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 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고 한다.
비익조(比翼鳥)는 부부의 금슬을 나타낸다.
비익조는 어찌나 부부 사이의 금슬이 좋은지 항상 붙어 다녀서,
심지어 날 때도 서로 몸을 붙인 채
수컷은 왼쪽 암 컷은 오른쪽 날개로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비익조이다.
시경에 나오는 저구(雎鳩)도 자웅(雌雄)의 사이가 좋아,
암수 중 한쪽이 죽으면 상대가 마저 따라 죽었기 때문에 멸종했다 한다.
나무에도 자웅이 사이가 좋은 것이 있는데 나이테가 이어져 섞인 나무
즉 연리지(連理枝)가 있다. 그러나
비익조는 전설상의 새이므로 그림으로 그릴 때는 원앙새와 비슷하게 그린다.
연리지(連理枝)라면「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한다.
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
간혹 거대한 고목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다정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다.
이처럼 '比翼'이나 '連理' 모두 그 말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본디 連理枝의 故事는 후한말(後漢末)의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다.
□ 賣炭翁 <숯 파는 늙은이>
伐薪燒炭南山中(벌신소탄남산중) 남산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굽고 있네
滿面塵灰煙火色(만면진회연화색) 얼굴 가득 재를 뒤집어쓴 그을음 색이고
兩鬢蒼蒼十指黑(량빈창창십지흑) 두 귀밑 털은 세고 열 손가락은 새까맣네
賣炭得錢何所營(매탄득전하소영) 숯 팔아 돈 생기면 무엇에 쓸고
身上衣常口中食(신상의상구중식) 몸에 걸칠 옷과 입에 넣을 음식이라네
可憐身上衣正單(가련신상의정단) 가련하게도 몸에 걸친 것은 홑옷이지만
心憂炭賤願天寒(심우탄천원천한) 마음으로는 숯 값이 싸질까 봐 날씨가 더 춥기를 바라네
夜來城外一尺雪(야래성외일척설) 간 밤에는 성 밖에 눈이 한 자나 쌓여
曉駕炭車輾氷轍(효가탄차전빙철) 날 새자 숯 실은 수레를 몰고 얼어붙은 길을 삐걱거리며 왔네
牛困人飢日已高(우곤인기일이고) 소는 지치고, 사람은 허기지고, 해는 이미 높이 솟아
市南門外泥中歇(시남문외니중헐) 시장 남문 밖에 이르러 진흙 속에서 쉬었다네
翩翩兩騎來是誰(편편량기래시수) 펄럭이며 말 타고 오는 두 사람은 누구인고
黃衣使者白衫兒(황의사자백삼아) 노란 옷의 내시와 흰 저고리의 젊은이네
手把文書口稱赦(수파문서구칭사) 문서를 손에 들고 입으로는 어명을 칭하고는
廻車叱牛牽向北(회차질우견향북) 수레를 돌려 소를 채찍하며 북쪽으로 끌고 가네
一車炭重千餘斤(일차탄중천여근) 수레에는 천근이 넘을 숯이 있건만
宮使驅將惜不得(궁사구장석부득) 대궐 심부름꾼이 몰아가니 아까운들 어찌하리
半匹紅綃一丈綾(반필홍초일장릉) 붉은 생사 반 필과 비단 한 장
繫向牛頭充炭直(계향우두충탄직) 소 머리에 걸쳐 주고 숯 값으로 친다네.
□ 鶴
人有各所好(인유각소호)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바가 있고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 사물에는 애당초 꼭 그래야만 되는 법도 없어
誰謂爾能舞(수위이능무) 누가 너를 일러 춤을 잘 춘다 하는가
不如閑立時(불여한립시) 한가롭게 서 있을 때만 못한 것을
□ 池上二絶 <지상이절>
山僧對棋坐(산승대기좌) 산승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데
局上竹陰淸(국상죽음청) 바둑판 위에 대나무 그늘이 시원하네
映竹無人見(영죽무인견) 대나무 그림자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고
時聞下子聲(시문하자성) 때때로 바둑 두는 소리만 들리네
小娃撑小艇(소왜탱소정) 소녀가 작은 배 저어
偸菜白蓮回(투채백연회) 흰 연을 훔쳐 따 가지고 돌아오다
不解藏踪迹(불해장종적) 종적 감출 줄을 몰라
浮萍一道開(부평일도개) 물풀위로 산뜻 길이 하나 생겼네
□ 琴茶 <음악과 차>
兀兀寄形群動內(올올기형군동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陶陶任性一生間(도도임성일생간) 내 멋대로 한평생 즐겁게 살았네
自抛官后春多夢(자포관후춘다몽) 벼슬을 그만두니 늘그막에 더욱 한가롭네
不讀書不老更閑(부독서부노갱한) 책 읽기도 그만두니 늘그막에 더욱 한가롭네
琴里知聞唯淥水(금리지문유녹수) 음악이라면 녹수곡이나 겨우 알고
茶中故舊是蒙山(다중고구시몽산) 차로 말하자면 몽산 차가 바로 나의 친구
窮通行止常相伴(궁통행지장상반) 형편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늘 함께 지내는 터
誰道吾今無往還(수도오금무왕환) 누가 지금 나에게 오가는 이 없다 하는가 ?
□ 長相思 <끝없는 그리움>
九月西風興(구월서풍흥) 구월에 서풍은 불어오고
月冷霜華凝(월냉상화응) 달빛은 차고 서리 희게 엉킨다
思君秋夜長(사군추야장) 그대 생각에 가을밤은 길기도 하고
一夜魂九升(일야혼구승) 혼백은 하룻밤에도 아홉 번이나 오른다
二月東風來(이월동풍내) 이월 동풍이 불어오니
草坼花心開(초탁화심개) 풀은 싹을 틔우고 꽃이 피어난다
思君春日遲(사군춘일지) 그대 생각에 봄날은 더디 가고
一夜腸九廻(일야장구회) 하로 밤에 간장 아홉 번이나 뒤집힌다
妾住洛橋北(첩주낙교배) 저는 낙교의 북쪽에 살았는데
君住洛橋南(군주낙교남) 당신은 낙교 남쪽에 살았었지요
十五卽相識(십오즉상식) 열다섯 나이에 서로 알게 되어
今年二十三(금년이십삼) 금년에 스물 세살이 되었어요
有如女蘿草(유여녀나초) 마치 담쟁이덩굴처럼 되어
生在松之側(생재송지측) 소나무에 기대어 사는 것 같았습니다
蔓短枝苦高(만단지고고) 줄기가 짧아 가지는 높아 오르기 힘들고
縈廻上不得(영회상부득) 아무리 타 오르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人言人有願(인언인유원)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에 소원이 있으면
願至天必成(원지천필성) 소원을 하면 하늘이 반드시 이루어 준다 합니다
願作遠方獸(원작원방수) 원하기는, 먼 곳의 비견수 되어
步步出肩行(보보출견항) 걸음마다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으면 해요
願作深山木(원작심산목) 또한 원하기는, 깊은 산에 나무되어
枝枝連理生(지지련리생) 가지마다 이어져 서로 닿아 살아갈 수 있었으면
□ 垂釣(낚시대 드리우고) - 白 居易 -
臨水一長嘯(임수일장소) 강가에서 길게 휘파람 불어보니
忽思十年初(홀사십년초) 문득 지난 십년 전 일이 생각난다.
三登甲乙第(삼등갑을제) 세번 진사과에 합격하고
一入承明廬(일입승명려) 한번 한림원에 들어갔었다
浮生多變化(부생다변화) 덧없는 인생 변화가 많나니
外事有盈虛(외사유영허) 세상일이란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법
今來伴江叟(금래반강수) 지금은 강가의 노인들과 벗하여
沙頭坐釣魚(사두좌조어) 모래 가에 앉아서 물고기 낚고 있다.
□ 何處難忘酒七首2 - 白居易 -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天涯話舊情(천애화구정) 하늘 끝 먼 곳에서 친구의 정 나눈다.
靑雲俱不達(청운구부달) 청운의 꿈 이루지 못하고
白髮遞相驚(백발체상경) 백발이 갈아드니 서로가 놀라는구나.
二十年前別(이십년전별) 이십 년 전에 이별하여
三千里外行(삼천리외항) 삼천 리 밖을 돌아다니는구나.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以敍平生(하이서평생) 무슨 수로 평생의 마음을 풀어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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