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경중(問鼎輕重)
중국의 하(夏)나라 始祖인 우(禹)임금이 아홉 제후들이 바친 청동을 모아
구정(九鼎)을 만들었는데 石器時代를 終熄시킨 청동기의 마력(魔力)은 신력(神力)의 象徵이었을 것이며,
특히 청동기 가운데서도 으뜸의 제작기법을 자랑한 정(鼎),
즉 청동(靑銅)솥은 신앙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정은 영물(靈物)로 성군(聖君)이 나타나 나라를 세우면 그 군주(君主)를 따라 옮겨갔다가
세상이 어지러우면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솥의 무게를 묻다“는 이 말의 뜻은
원래 제위(帝位)를 엿보는 속셈을 은근히 표현해보는 것에서 비롯된 말로
오늘날에는 상대의 실력과 내부 사정을 살펴서 그 약점(弱點)을 떠보는 것,
혹은 그 약점을 파악(把握)하여 공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 등에 나오는 내용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초(楚)나라의 장왕(莊王) 때의 일로
장왕은 초의 세력권을 넓히기 위해 기원전 606년 봄 육혼(陸渾) 지방의 융족(戎族)을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낙수(洛水) 근처로 나왔다.
낙수의 북쪽에는 주(周)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이 있었는데 그 근처 국경에 대군을 주둔시킨 것이다.
주나라의 정왕(定王)은 초나라의 시위에 놀라
대부(大夫) 왕손만(王孫滿)을 보내 장왕의 노고(勞苦)를 위문하게 했는데
왕손만을 만난 장왕은 왕손만에게 주나라에 있는 구정(九鼎)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
구정(九鼎)은 위에서와 같이 고대 우(禹) 임금 때 주조(鑄造)되었다고 전하는
천자(天子)의 덕(德)을 상징하는 거대한 솥으로
하(夏), 은(殷), 주(周) 대대로 천자가 계승(繼承)해 오는 보물이었는데
초장왕(楚莊王)이 구정(九鼎)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을 물은 것은
언제든 제위(帝位)의 상징이기도 한 구정을 차지하여
천자의 자리에 앉아보겠다는 속셈의 표현이자 은근한 협박(脅迫)이기도 했다.
이런 속셈을 간파한 왕손만은 장왕에게 솥의 유래(由來)를 길게 설명하고 나서
“솥의 경중(輕重)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덕(德)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입니다.
천자(天子)의 덕이 있다면
작은 솥이라도 무겁게 버티고 있는 것이고,
덕이 흐려져 있다면
큰 솥이라도 가볍게 옮겨질 수 있으니(德之休明 雖小必重 其姦回昏亂 雖大必輕)
솥은 항상 덕이 있는 곳에 옮겨져 왔던 것입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쇠퇴하자 솥은 은(殷)나라로 옮겨가고,
은의 주왕(紂王) 때 덕이 쇠퇴하자
다시 주(周)나라로 옮겨갔습니다.
오늘날까지 주나라가 솥을 전해 온 것은 하늘의 명(命)으로
주나라의 덕이 쇠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천명(天命)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솥의 경중은 아직 물으실 일이 아닐 것입니다.”라고 쐐기를 박는 말을 하였다.
조리(條理) 있으면서도 단호(斷乎)한 이 대답에
초장왕은 그제서야 머쓱해져서 무력(武力)만으로는 아직 주(周)나라를 칠 수 없음을 깨닫고
발길을 뒤돌리고 말았다고 하는데 이로부터 ‘솥의 경중을 묻는다’고 하면
제위(帝位)를 엿보거나 상대의 형편을 보아 공격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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