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漢詩

雪泥鴻爪

백산(百山) 2011. 12. 24. 03:14

 

 

雪泥鴻爪(설니홍조)는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 눈이 녹으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자취가 눈 녹듯이 사라져 무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송(宋)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라는 시에서 유래하였는데,

당시 고향을 떠나 타국을 떠돌며 힘겨운 활동을 벌이던 이 강선생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서첩제목 "雪泥鴻爪(설니홍조)" 이다.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민지회구)  - 蘇東坡 -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인생이 어디에 이르고, 또 머무는 일인지 아는가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날던 기러기가 잠시 잔설 덮인 진흙을 밟는 것과 같다네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우연히 진흙에 발자국을 남긴다 할지라도

鴻飛那復記東西(홍비나부기동서) 기러기 다시 날아 동으로 갈지 서로 갈지 알 수 있겠는가

 

老僧已死成新塔(로승이사성신탑) 노승은 이미 죽어 새로운 탑이 섰고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벽은 이미 무너져 예전에 쓴 시를 찾아볼 길 없네.

往日崎嶇還知否(왕일기구환지부) 지난 날 기구함을 기억이나 하는가?

路長人困蹇驢嘶(로장인곤건려시) 길은 멀고 사람은 피곤한데,

                                                먼 길에 절룩이는 나귀는 울어 대네...

 

사람의 생은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 밭에 잠깐 내려앉아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

기러기는 다시금 후루룩 날아갔다.

어디로 갔는가?

알 수가 없다.

예전 우리 형제가 이 곳을 지나다가 함께 묵은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를 맞아 주던 노승은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나 새 탑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전 절집 벽에 적어둔 시는 벽이 다 무너져 이제 와서 찾을 길이 없다.

분명히 내 손으로 적었건만 무너진 벽과 함께 흙으로 돌아갔다.

노승은 육신을 허물고 탑 속으로 들어갔다. 틀림없이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다. 

 

여보게 아우님! 그 가파르던 산길을 기억하는가?

길은 끝없이 멀고, 사람은 지쳤는데,

절룩거리는 노새마저  배가 고프다며 울어 대던 그 길 말일세.

이제 그 기억만 남았네.

그 안타깝던 마음만 이렇게 남았네.

 

* 소동파(蘇東坡),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 중에서

눈 내린 들녘에 새겨진 기러기 발자국.

눈이 녹고 나면 발자국도 함께 사라진다.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덧없고 무상한 인생을 비유한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말은

소동파(蘇東坡)가 동생인 소철(蘇轍)에게 보낸 이 시에서 나왔다.

 

* 선불교 운문종(雲門宗)의 거봉

설두중현(雪竇重顯)의 법사(法嗣)인 천의의회(天衣義懷) 선사의

다음과 같은 선시(禪詩)도 설니홍조(雪泥鴻爪)와 맥(脈)이 닿아 있다.

 

 雁過長空(안과장공)         기러기 머나먼 하늘을 날아가니

 影沈寒水(영침한수)         차가운 물에 그림자 잠기는 도다.

雁無遺跡之意(안무유적지의) 기러기 물에 자취 남길 뜻 없고,

水無留影之心(수무류영지심) 물은 그림자 남겨둘 마음 없네.

 

 

次梅溪韻(차매계운) - 成重淹(성중엄) -
 吾衰無夢到金門(오쇠무몽도금문) 나 늙어 벼슬할 생각 없어
 虛度良辰嶺外村(허도량진령외촌) 시골 마을에서 쓸쓸히 명절을 보낸다
 往事春泥鴻着爪(왕사춘니홍착조) 지난 일 봄 눈밭 위의 기러기 발자국처럼 사라지고,
 浮名滄海劍無痕(부명창해검무흔) 푸른 바다 떠돈 헛된 이름 흔적도 없구나
 飄零羈羽何當擧(표령기우하당거) 낙마하여 떠도는 신세, 어찌 다시 날개짓 하며
 寂寞灰心不復溫(적막회심불복온) 적막하여 불꺼진 마음 다시 덥히지 못하네
 自幸知音梅老在(자행지음매노재) 다행히도 참된 친구 매노선생이 있어
 江南風月養詩魂(강남풍월양시혼) 강남의 음풍농월이 나의 시심 키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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