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理判事判)은 수행정진하는
이판(理判)스님과 행정을 맡은 사판(事判)스님에서 비롯됐다.
스님의 역할을 구분하는 이 단어는 세속에서 갈 데까지 간 ‘끝장’을 일컫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판사판 은 조선시대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표방한 조선은
고려시대에 막강파워를 자랑하던 불교를 탄압했다.
억불정책으로 천민계급이 되어버린 승려들은 사찰에서 종이를 만들거나
사고(史庫)를 관리하고 산성 축조와 그 성의 수비를 맡았다.
사찰의 행정이나 사무를 처리하는 사판(事判)승의 유래다.
이판(理判)승은
산속에 은둔하며 참선 등 수행을 통해 불법(佛法)을 잇는 승려들을 의미했다.
불교에선 교리 공부나 연구도 수행의 한 방법으로 여겨 학승도 이판승으로 불렀다.
조선의 억불정책 때문에 도성 밖으로 쫓겨난 이판, 사판들은
모두 한양 성안 출입이 금지됐다.
당시 승려가 된다는 건 인생의 막다른 단계에 처함을 뜻했고
그때부터 이판사판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끝장의 의미로 사용됐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이판사판은 앞뒤 잴 것 없이 체념의 심정으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7시55분 80세로 입적한 智冠(지관)스님은
이(理)와 사(事)를 겸비한 이판사판스님이다.
당시 스님이 전한 말이 되새겨진다.
인생이란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듯 서운할 것도 흐뭇할 것도 없다.
설밑의 번잡함을 보듬어주는 이판사판의 울림이다.
지관스님이 어제 입적하시기 전에
'사세(辭世 - 죽음)을 앞두고 '라는 글(임종게-臨終偈)을 남기셨다네요.
임종게를 음미해 보면서 삼가 큰 스님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합장합니다...
辭世를 앞두고
--智冠(지관) 스님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法身(법신)을 寂滅(적멸)에 드러내네
팔십년 전에는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낱말 풀이
辭世(사세) : 죽음 臨終偈(임종게)
法身(법신) :부처의 몸
寂滅(적멸) : 해탈의 경지
臨終偈(임종게) : 죽음을 앞두고 남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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