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漢詩

청산리 벽계수 - 황 진이 -

백산(百山) 2010. 10. 12. 23:02

 

 

 

황 진이( 眞伊) 어려서부터 얼마나 예쁘면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고,
그 상여가 움직이지 못하자 진이가 소복을 입고 상여를 밀자 움직였다 하지요.
그래서 진이는 평생 출가를 않고 시작과 풍류를 즐기면서 기생으로 자유롭게
연애를 하며 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유명한 일화는 당시의 왕실 한량 벽계수가 개성을 지날 때 진이가 가야금을 타며
시조를 읊었더니 벽계수가 깜짝 놀라서 말에서 떨어졌다 하지요.
한마디로 쪽 다 팔았는 겁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가 어려오니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간들 엇더리

 

벽 계수를 잽 한방에 가볍게 케이오우 시킨 황 진이 다음 상대로
개성 철옹산 토굴에서 십년 째 벽면수도(말없이 눕지 않고 좌선하는 기도 방법)중인
지족선사를 깨기로 하고 비오는 날 모시적삼을 입고 비를 맞으며
토굴로 찾아 가서는 하룻밤 묵을 것을 청하여
그 날밤 살아 있는 생불(生佛: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지족선사를
한 펀치에 KO 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이라는 말이 생겨 났습니다.


한껏 기고만장 하여 진 황 진이 이번에는
대 유학자 경덕에게 추파를 던졌으나 그만 패하고 만다.
이후 그녀는 서 경덕을 스승님 이자 연인으로 한 평생을 모시면서
송도삼절(松都三絶:개성의 삼 절개)로 자신과 서 경덕, 박연폭포 라고 스스로 칭하였다.  

 

 그런 황 진이도 노년에 쓸쓸히 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그 후 임 제( )라는 분이 평안도사로 부임 차 임지로 떠나는 길에
개성에 들러 진이를 한번 품어 보고 싶었는데 한 발 늦어서
그만 이세상 사람이 아닌지라 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유명한 시를 남기지요.

 

청초 우거진 골에 - 임제(林悌)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그런데 당시에도 시기하는 놈들이 있어서 이를 임금님께 직보를 하여
임 제는 평안감사로 부임하기도 전에 파면되어 버렸습니다.

임금님이 볼 때는 직무유기... 괘씸죄에 걸려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조금의 오류가 있을 순 있습니다 만은
모두가 사실입니다...

 

황 진이의 시조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물 아니로다

주야(晝夜)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잊어 우러 예어 가는고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어저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 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촌야 - 백 낙천 -  (0) 2010.10.12
무어별 - 임 제 -  (0) 2010.10.12
영정중월 - 이 규보 -  (0) 2010.10.12
산중문답 - 이 백 -  (0) 2010.10.12
까마귀 검다하고 - 이 직 -  (0) 2010.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