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진이(黃 眞伊) 어려서부터 얼마나 예쁘면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고,
그 상여가 움직이지 못하자 진이가 소복을 입고 상여를 밀자 움직였다 하지요.
그래서 진이는 평생 출가를 않고 시작과 풍류를 즐기면서 기생으로 자유롭게
연애를 하며 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유명한 일화는 당시의 왕실 한량 벽계수가 개성을 지날 때 진이가 가야금을 타며
시조를 읊었더니 벽계수가 깜짝 놀라서 말에서 떨어졌다 하지요.
한마디로 쪽 다 팔았는 겁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가 어려오니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간들 엇더리
벽 계수를 잽 한방에 가볍게 케이오우 시킨 황 진이 다음 상대로
개성 철옹산 토굴에서 십년 째 벽면수도(말없이 눕지 않고 좌선하는 기도 방법)중인
지족선사를 깨기로 하고 비오는 날 모시적삼을 입고 비를 맞으며
토굴로 찾아 가서는 하룻밤 묵을 것을 청하여
그 날밤 살아 있는 생불(生佛: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지족선사를
한 펀치에 KO 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 이라는 말이 생겨 났습니다.
한껏 기고만장 하여 진 황 진이 이번에는
대 유학자 서 경덕에게 추파를 던졌으나 그만 패하고 만다.
이후 그녀는 서 경덕을 스승님 이자 연인으로 한 평생을 모시면서
송도삼절(松都三絶:개성의 삼 절개)로 자신과 서 경덕, 박연폭포 라고 스스로 칭하였다.
그런 황 진이도 노년에 쓸쓸히 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그 후 임 제(林 悌)라는 분이 평안도사로 부임 차 임지로 떠나는 길에
개성에 들러 진이를 한번 품어 보고 싶었는데 한 발 늦어서
그만 이세상 사람이 아닌지라 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유명한 시를 남기지요.
청초 우거진 골에 - 임제(林悌)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그런데 당시에도 시기하는 놈들이 있어서 이를 임금님께 직보를 하여
임 제는 평안감사로 부임하기도 전에 파면되어 버렸습니다.
임금님이 볼 때는 직무유기... 괘씸죄에 걸려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조금의 오류가 있을 순 있습니다 만은
모두가 사실입니다...
황 진이의 시조
산(山)은 옛 산(山)이로되 물은 옛물 아니로다
주야(晝夜)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情)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變)할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잊어 우러 예어 가는고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어저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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