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葛亮(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忠臣)이 아니고,
李密(이밀)의 진정표(陳情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효자(孝子)가 아니며,
韓退之(한퇴지). 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우애(友愛)가 없는 사람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세상에서는 이 세 글을 명문이라고 말해왔다.
□ 出師表(출사표) - 諸葛亮(제갈량)
臣亮言(신량언) : 신 제갈량이 말씀을 올립니다.
先帝創業未半(선제창업미반) : 선제께서 천하의 일을 반도 완성을 못하시고
而中道崩殂(이중도붕조) : 중도에서 붕어하시니
今天下三分(금천하삼분) :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
益州疲弊(익주피폐) : 익주는 피폐해졌습니다.
此誠危急存亡之秋也(차성위급존망지추야) :이 시기는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는 위급한 때입니다.
然侍衛之臣(연시위지신) : 하지만 가까이 있는 신하들이
不懈於內(불해어내) : 안에서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忠志之士(충지지사) : 충성심을 가진 신하들은
忘身於外者(망신어외자) : 바깥에서 나라를 지킴에 몸을 아끼지 않으니
蓋追先帝之殊遇(개추선제지수우) : 이는 모두가 선제의 특별한 총애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欲報之於陛下也(욕보지어폐하야) : 그러므로 폐하께 그 은덕을 갚고자 하오니
誠宜開張聖聽(성의개장성청) : 폐하께서는 진심으로 귀를 크게 여시어 들으시고
以光先帝遺德(이광선제유덕) : 선제께서 남긴 그 유덕을 빛내시며
恢弘志士之氣(회홍지사지기) : 큰 뜻을 품은 지사들의 기세를 더욱 크게 해 주십시오.
不宜妄自菲薄(불의망자비박) : 함부로 자신을 낮추지 마시옵고
引喩失義(인유실의) : 옳지 않은 비유로
以塞忠諫之路也(이색충간지로야) : 충간의 길을 막지 마옵소서.
宮中府中(궁중부중) : 궁중과 관아가
俱爲一體(구위일체) :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에
陟罪臧否(척죄장부) : 승진과 죄 그리고 선함과 악함을 다룸에 있어서는
不宜異同(불의이동) : 마땅히 다름이 없어야 합니다.
若有作奸犯科(약유작간범과) : 만일 간악한 짓을 해 법을 어긴 죄가 있다거나
及爲忠善者(급위충선자) : 충성스럽고 선한 자가 있을 시에는
宜付有司(의부유사) : 마땅히 속한 관아에 맡기어
論其刑賞(논기형상) : 그 형벌과 상을 논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以昭陛下平明之理(이소폐하평명지리) : 폐하의 공평하고 깨끗한 다스림을 밝게 드러나게 하시고
不宜偏私使內外異法也(불의편사사내외이법야) : 사사로이 치우치어 안과 밖의 법 적용이 달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侍中侍郞(시중시랑) : 시중시랑인
郭攸之費禕董允等(곽유지비의동윤등) : 곽유지와 비의, 동윤 등은
此皆良實(차개양실) : 다 어질고 신실하여
志慮忠純(지려충순) : 뜻과 생각이 충성스럽고 진실한 자들입니다.
是以先帝簡拔(시이선제간발) : 선제께서 가려내어 뽑아
以遺陛下(이유폐하) : 폐하께 남겨주셨습니다.
愚以爲(우이위) : 우매한 사람이 생각을 하건데
宮中之事(궁중지사) : 궁중의 일은
事無大小(사무대소) :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悉以咨之(승이자지) : 무엇이든 그들에게 자문을 구하시고
然後施行(연후시행) : 그런 후에 시행을 하신다면
必能裨補闕漏(필능비보궐루) : 반드시 조정의 틈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有所廣益(유소광익) : 널리 유익함이 있을 것입니다.
將軍向寵(장군상총) : 장군 상총은
性行淑均(성행숙균) : 성품과 행동이 어질고 가지런하며
曉暢軍事(효창군사) : 군사에 관해 막힘이 없이 밝아
試用於昔日(시용어석일) : 지난 날 잠시 써 살피시고는
先帝稱之曰(선제칭지왈) : 선제께서 칭찬하며 말씀하시기를
“能”(능) : 유능하다 하셨으니
是以衆議擧寵爲督(시이중의거총위독) : 이에 군신들이 논의하여 상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愚以爲(우이위) : 우매한 사람이 생각을 하건데
營中之事(영중지사) : 군영의 일은
事無大小(사무대소) :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悉以咨之(실이자지) : 무엇이든 그에게 자문을 구하신다면
必能使行陣和睦(필능사행진화목) : 반드시 진영은 화목하게 될 것이며
優劣得所(우열득소) : 그 자질에 맞추어 병사들을 잘 쓸 것입니다.
親賢臣(친현신) :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遠小人(원소인) : 소인을 멀리 하였기에
此先漢所以興隆也(차선한소이흥륭야) : 이로 인하여 옛 한나라가 융성하였던 것입니다.
親小人(친소인) : 소인을 가까이 하고
遠賢臣(원현신) : 현명한 신하를 멀리 하였기에
此後漢所以傾頹也(차후한소이경퇴야) : 후한은 이로 인하여 기울고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先帝在時(선제재시) : 선제께서 계실 때에
每與臣論此事(매여신론차사) : 늘 신과 이 일을 논의하면서
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미상불탄식통한어환영야) : 환제와 영제 때의 일을 탄식하고 통한을 갖지 않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侍中尙書長史參軍(시중상서장사참군) : 시중상서와 장사, 참군은
此悉貞亮死節之臣(차실정량사절지신) : 모두가 다 마음이 곧고 분명하여 절개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신하들이니
願陛下親之信之(원폐하친지신지) : 원하옵건데 폐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두시고 믿음을 가지시옵소서.
則漢室之隆(즉한실지륭) : 그렇게 하신다면 한나라 왕실의 융성은
可計日而待也(가계일이대야) : 가히 날짜를 꼽듯이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臣本布衣(신본포의) : 신은 본래 미천한 사람으로
躬耕於南陽(궁경어남양) : 남양에서 몸소 밭을 갈며
苟全性命於亂世(구전성명어난세) : 난세에 구차하게 목숨을 온전히 유지하고 살며
不求聞達於諸侯(불구문달어제후) : 제후에게 알려지려 힘쓰지도 않았습니다.
先帝不以臣卑鄙(선제불이신비비) : 선제께서는 신을 천하고 비루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猥自枉屈(외자왕굴) : 진실로 스스로 몸을 낮추시며
三顧臣於草廬之中(삼고신어초려지중) : 세 번이나 신의 오두막을 찾으시어
諮臣以當世之事(자신이당세지사) :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由是感激(유시감격) : 이에 감격하여
遂許先帝以驅馳(수허선제이구치) : 마침내 선제의 마부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後値傾覆(후치경복) : 나라가 기울어 넘어지려 하고
受任於敗軍之際(수임어패군지제) : 군이 패전한 때에 임무를 맡았으니
奉命於危難之間(봉명어위난지간) : 그렇게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爾來二十有一年矣(이래이십유일년의) : 그 후로 21년이 지나갔습니다.
先帝知臣謹愼(선제지신근신) : 선제께서는 신이 몸을 삼가 함을 아시고
故臨崩(고임붕) : 임종을 맞이하시며
寄臣以大事也(기신이대사야) : 신에게 큰일을 맡기시었던 것입니다.
受命以來(수명이래) : 명을 받은 이래로
夙夜憂歎(숙야우탄) : 밤낮으로 근심하고 한탄 하였지만
恐託付不效(공탁부불효) : 맡기신 일이 공효가 없어 염려함은
以傷先帝之明(이상선제지명) : 선제의 밝은 유업에 누를 끼칠까 봐 그런 것입니다.
故五月渡瀘(고오월도노) : 그리하여 지난 오월에 노수를 건너
深入不毛(심입불모) :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갔기에
今南方已定(금남방이정) : 이제 남방은 이미 평정이 되었습니다.
兵甲已足(병갑이족) : 군사와 무기도 풍족하기에
當獎率三軍(당장솔삼군) : 권하오니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北定中原(북정중원) : 북쪽 중원을 평정해야 합니다.
庶竭駑鈍(서갈노둔) : 바라옵건데 소신 둔하고 미련하오나 있는 힘을 다해
攘除姦凶(양제간흉) : 간악하고 흉악한 것들을 물리치고
興復漢室(흥복한실) : 한나라 왕실을 회복하고 일으키어
還於舊都(환어구도) :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此臣所以報先帝(차신소이보선제) :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일이며
而忠陛下之職分也(이충폐하지직분야) : 폐하께는 직분을 다해 충성하는 길입니다.
至於斟酌損益(지어짐작손익) : 손익을 짐작하여
進盡忠言(진진충언) : 다만 나아가 충언을 올리는 일은
則攸之禕允之任也(칙유지의윤지임야) : 곽유지와 비의, 동윤의 임무입니다.
願陛下託臣以討賊興復之效(원폐하탁신이토적흥복지효) : 원하옵건데 폐하께서는 신이 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회복하고
일으키는데 힘을 쓸 수 있도록 해 주시옵고
不效則治臣之罪(불효칙치신지죄) : 공효가 없다 하면 신을 죄로 다스리시고
以告先帝之靈(이고선제지령) : 이를 선제의 영전에 고하소서.
若無興德之言(약무흥덕지언) : 만일 그 은덕을 느끼는 간언이 없다면
則責攸之禕允等之慢 (즉책유지의윤등지만) : 곽유지와 비의, 동윤 등의 게으름을 책하시고
以彰其咎(이창기구) : 그 허물을 드러내소서.
陛下亦宜自謀(폐하역의자모) : 폐하께서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도모하시어
以諮諏善道(이자추선도) : 자문을 구하시고 옳은 길을 물으소서.
察納雅言(찰납아언) : 바른 말을 살펴 들으시며
深追先帝遺詔(심추선제유조) : 선제의 유조를 중히 따르소서.
臣不勝受恩感激(신불승수은감격) : 신은 은혜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今當遠離(금당원리) : 이제 멀리 떠나며
臨表涕泣(임표체읍) : 표문을 대하니 눈물이 나
不知所言(부지소언) :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
중국 진(晉)나라 때에, 이밀(李密)이 지은 글.
무제(武帝)가 자신을 진의 세마(洗馬)로 임명하자,
자신이 아니면 나이 아흔인 조모(祖母) 유 씨(劉氏)를 봉양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벼슬에 나갈 수 없다는 사연을 적어 올린 글이다.
臣以險釁(신이험흔)으로 : 저는 불행하게도
夙遭愍凶(숙조민흉)하여 : 일찍이 부모를 잃어
生孩六月(생해육월)에 : 생후 6 개월된 갓난 아이 때
慈父見背(자부견배)하고 : 아버님과 사별하고
行年四歲(행년사세)헤 : 나이 네 살 때
舅奪母志(구탈모지)니이다 : 외삼촌이 어머니의 수절하려는 뜻을 빼앗았습니다
祖母劉閔臣孤弱(조모유민신고약)하여 : 조모 유씨가 제가 외롭고 약한 것을 불쌍히 여겨
躬親撫養(궁친무양)이니다 : 모소 키워주셨습니다
臣少多疾病(신소다질병)하여 : 저는 어릴 적에 병이 많았고
九歲不行(구세불행)하고 : 아홉 살이 되어도 걷지 못했고
零丁孤苦(영정고고)하며 :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고생하며
至于成立(지우성립)하니 : 성인이 되었습니다
旣無叔伯(기무숙백)이오 : 제에게는 숙부나 백부도 없고
終鮮兄弟(종선형제)니이다 : 형제도 없습니다
門衰祚薄(문쇠조박)하여 : 가문이 쇠퇴하고 박복햇
晩有兒息(만유아식)하니 : 늦게서야 자식을 두었으니
外無朞功强近之親(외무기공강근지친)이요 : 밖으로 기복이나 공복을 입을 만한 가까운 친척도 없고
內無應門五尺之童(내무응문오척지동)이니이다 : 안으로는 문앞에서 손님을응대할 어린 시동 하나 없습니다
焭焭孑立(경경혈립)하여 : 홀로 외롭게 살아가면서
形影相吊(형영상조)어늘 : 내 몸과 그림자가 서로 위로할 따름이었거늘
而劉夙嬰疾病(이유숙영질병)하여 : 조모 유씨도 일찍이 병에 걸려
常在牀褥(상재상욕)하니 : 늘 자리에 누워 계십니다
臣侍湯藥(신시탕약)하여 : 저는 탕약을 다려올리며
未嘗廢離(미상폐리)로이다 :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逮奉聖朝(체봉성조)에 : 지금의 조정을 받들게 되면서
沐浴淸化(목욕청화)하여 : 맑은 교화를 온 몸에 입고 있습니다
前太守臣逵(전태수신규)가 : 전의 태수인 가규는
察臣孝廉(찰신효렴)하고 : 저를 효렴으로 발탁하였고
後刺史臣榮(후자사신영)이 : 후에 자사인 고영은
擧臣秀才(거신수재)하나이다 : 저를 수재로 천거해 주셨습니다.
臣以供養無主(신이공양무주)로 : 그러나 저는 조모의 공양을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辭不赴(사불부)러니 : 사퇴하고 부임하지 않았는데
會詔書特下(회조서특하)하사 : 마침 조서가 특별히 내려져서
拜臣郞中(배신랑중)하시고 : 저를 낭중으로 임명하시었고
尋蒙國恩(심몽국은)하여 : 얼마 되지 않아 나라의 은혜를 입어
除臣洗馬(제신선마)하시니 : 저에게 선마의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猥以微賤(외이미천)으로 : 외람되게도 미천한 몸으로
當侍東宮(당시동궁)이라 : 동궁을 모시게 되니
非臣隕首所能上報(비신운수소능상보)니이다 : 제가 목을 바친다해도 그 은혜를 다 보답할 수 없을 겁니다
臣具以表聞(신구이표문)하여 : 저는 사정을 모두 아뢰는 표를 올리고
辭不就職(사불취직)이러니 : 사퇴하여 곤직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詔書切峻(조서절준)하여 : 다시 조서를 내리시어 절실하고도 준엄하게
責臣逋慢(책신포만)하시고 : 제가 책임을 회피하고 태만함을 책망하고
郡縣逼迫(군현핍박)하여 : 군과 현에서는 다그쳐서
催臣上道(최신상도)하니 : 제가 길을 떠나도록 재촉하며
州司臨門(주사임문)이 : 주의 관리들도 문에 와서는
急於星火(급어성화)니이다 : 성화같이 서두르고 있습니다
臣欲奉詔奔馳(신욕봉조분치)인댄 : 제가 조서를 받들어 빨리 다려가고 싶지만
則以劉病日篤(칙이유병일독)이오 : 조모 유씨이 병환이 날로 위독하고
欲苟順私情(욕구순사정)인댄 : 구차히 개인의 사정을 따르고자 하여
則告訴不許(칙고소불허)하니 :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으니
臣之進退(신지진퇴)가 : 제가 벼슬길에 나아가야 하는지 물러나야 하는지
實爲狼狽(실위낭패)로소이다 : 참으로 낭패입니다
伏惟聖朝(복유성조)가 :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지금의 조정은
以孝治天下(이효치천하)하사 :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려서
凡在故老(범재고로)라도 : 모든 노인들이 살아서
猶蒙矜育(유몽긍육)하니 : 동정을 받아 양육되고 있습니다
況臣孤苦(황신고고)가 : 하물며 저는 홀로 고생하는 것이
特爲尤甚(특위우심)이리이까 : 남보다 더욱 심함에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且臣少事僞朝(차신소사위조)하여 : 또한 저는 젊어서 위조인 촉나라를 섬겨
歷職郞署(역직랑서)하니 : 낭서에서 근무하였으니
本圖宦達(본도환달)하여 : 본래 출세하기를 바라서
不矜名節(불긍명절)이니이다 : 명예나 절개를 자랑삼지 않았습니다
今臣亡國之賤俘(금신망국지천부)라 : 이제 저는 망국의 천한 포로로
至微至陋(지미지루)어늘 : 지극히 미천하고 지극히 비루한데도
過蒙拔擢(과몽발탁)하니 : 과분하게 발탁하니
寵命優渥(총명우악)하온대 : 총명이 우악하온데
豈敢盤桓(기감반환)하며 : 어찌 감시 주저하며
有所希冀(유소희기)이리까 : 바라는 바가 있겠습니까
但以劉(단이유)가 : 다만 조모 유씨가
日薄西山(일박서산)하여 : 마치 해가 서산에 지려는 것처럼
氣息奄奄(기식엄엄)하니 : 숨이 끊어지려고 하여
人命危淺(인명위천)하여 : 사람의 못숨이 위태로우니
朝不慮夕(조불려석)이니이다 : 아침에 저녁의 일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臣無祖母(신무조모)면 : 저는 조모가 없었다면
無以至今日(무이지금일)이오 :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祖母無臣(조모무신)면 : 조모께서는 제가 없으면
無以終餘年(무이종여년)이니 : 여생을 마칠 수 없을 터이니
母孫二人(모손이인)이 :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更相爲命(갱상위명)이니이다 : 더욱 서로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是以區區(시이구구)하여 : 이런까닭으로 소심해져서
不能廢遠(불능폐원)이로소이다 : 능히 그만두고 멀리할 수 없습니다
臣密(신밀)은 : 저 밀은
今年四十有四(금년사십유사)오 : 금년에 나이 마흔 넷이고
祖母劉(조모유)는 : 조모 유씨는
今九十有六(금구십유육)이니 : 이제 아흔 여섯이니
是臣盡節於陛下之日(시신진절어폐하지일)은 : 이는 신이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長(장)하고 : 길고
報劉之日(보유지일)은 : 할머니 유씨를 봉양할 날은
短也(단야)니이다 : 짧은 것입니다
烏鳥私情(오조사정)이 :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를 보답하려는 사사로움 마음이
願乞終養(원걸종양)하노니 :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
臣之辛苦(신지신고)는 : 저의 괴로움은
非獨蜀之人士(비독촉지인사)와 : 촉의 인사들만이 아니라
及二州牧伯所見明知(급이주목백소견명지)니이다 : 양주와 익주 두 주의 장관들도 훤히 아는 바이며
皇天后土(황천후토)가 : 천지신명께서도
實所共鑑(실소공감)이시니이다 : 실로 모두 보고 있는 바입니다
願陛下(원폐하)는 :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矜愍愚誠(긍민우성)하사 : 어리석은 저의 정성을 가엾게 여기시어
廳臣微志(청신미지)하여 : 저의 작은 뜻을 들어 주십시오
庶劉僥倖(서유요행)하여 : 제가 바라는 것은 조모 유씨께서 다행히
卒保餘年(졸보여년)이면 : 여생을 끝까지 보전하게 된다면
臣生當隕首(신생당운수)요 : 제가 살아서는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
死當結草(사당결초)리이다 : 죽어서는 결초보은하려는 것입니다
臣不勝怖懼之情(신불승포구지정)하여 : 저는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謹拜表以聞(근배표이문)하노이다 : 삼가 재배하고 표를 올려 아뢰옵니다
□ 한유(韓愈)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
字는 退之(퇴지). 諡號(시호)는 文公(문공).
唐代(당대)의 文豪로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중 第一人者이다.
한유(韓愈)가 조카 십이랑(十二郞)(名 老成)의 상(喪)을 당하고 지어 보낸 제문(祭文)으로, 그의 서정산문(抒情散文) 중 명작(名作)이다. 제문(祭文)은 본래 운문병어(本來韻文騈語)의 형식(形式)을 빌어 썼으나, 이 글은 산문체(散文體)로 썼다는 데 특색(特色)이 있다. 십이랑(十二郞)과는 숙질간(叔姪間)이지만, 어려서부터 서로 의지하면서 자란 처지이기에, 십이랑(十二郞)의 죽음은 한유(韓愈)에게 형언(形言)할 수 없는 비통(悲痛)을 안겨 주었다. 자자구구(字字句句)가 순박(純樸)하고 간곡(懇曲)하여 독자(讀者)한테 폐부(肺腑)를 찌르는 애감(哀感)을 느끼게 한다. 옛 사람들은 이 글을 지칭(指稱)하여 제문중천고의절조(祭文中千古絶調)라고 극찬(極讚)한 바 있다. 제문(祭文)은 본시 제전(祭奠)을 올릴 때 읽는 문장(文章)으로, 일반적(一般的)으로 귀신(鬼神)에 제고(祭告)하는 것과 사자(死者)를 애도(哀悼하)는 것의 양종(兩種)이 있다.
한유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잃었다.
3세에 아버지를, 14세에 형 한회(韓會)를 잃고 형수 정씨에 의해 길러졌다.
한유는 어린 시절 비슷한 나이의 조카와 함께 형수의 보살핌으로 자랐다.
7세 때부터 독서를 시작한 한유는 13세에 문장에 재능을 보였다.
정원(貞元) 2년(786년)부터 장안에서 과거에 응시했으나,
이렇다 할 문벌도 뒷 배경도 없었던 그는 세 번이나 낙방하고서 8년(792년)에 진사과에 합격하였다.
다시 이부시(吏部試)에 응시하였을 때에도 다시 세 번이나 낙방한 그는
정원 11년(795년) 세 번이나 재상에게 글을 올리고서야 가까스로 천거된다.
제십이랑문은 요절한 조카를 생각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한유(韓愈)(열 두 번째 조카를 제사지내는 글)
한유(韓愈)가 조카 십이랑(十二郞)(名 老成)의 상(喪)을 당하고 지어 보낸 제문(祭文)으로,
그의 서정산문(抒情散文) 중 명작(名作)이다. 제문(祭文)은 본래 운문병어(本來韻文騈語)의 형식(形式)을 빌어 썼으나,
이 글은 산문체(散文體)로 썼다는 데 특색(特色)이 있다.
십이랑(十二郞)과는 숙질간(叔姪間)이지만, 어려서부터 서로 의지하면서 자란 처지이기에,
십이랑(十二郞)의 죽음은 한유(韓愈)에게 형언(形言)할 수 없는 비통(悲痛)을 안겨 주었다.
자자구구(字字句句)가 순박(純樸)하고 간곡(懇曲)하여 독자(讀者)한테 폐부(肺腑)를 찌르는 애감(哀感)을 느끼게 한다.
옛 사람들은 이 글을 지칭(指稱)하여 제문중천고의절조(祭文中千古絶調)라고 극찬(極讚)한 바 있다.
제문(祭文)은 본시 제전(祭奠)을 올릴 때 읽는 문장(文章)으로,
일반적(一般的)으로 귀신(鬼神)에 제고(祭告)하는 것과
사자(死者)를 애도(哀悼하)는 것의 양종(兩種)이 있다.
□ 祭 十 二 郞 文 韓 愈
年月日 季父愈聞汝喪之七日 乃能銜哀致誠 使建中遠具時羞之奠 告汝十二郞之靈
연월일 계부유문여상지칠일 내능함애치성 사건중원구시수지전 고여십이랑지령
嗚呼 吾少孤 及長不省所怙 惟兄嫂是依 中年兄歿南方 吾與汝俱幼 從嫂歸葬河陽
오호 오소고 급장불성소호 유형수시의 중년형몰남방 오여여구유 종수귀장하양
旣又與汝就食江南 零丁孤苦 未嘗一日上離也 吾上有三兄 皆不幸早世 承先人後者 在孫惟汝 在子惟吾
기우여여취식강남 영정고고 미상일일상리야 오상유삼형 개불행조세 승선인후자 재손유여 재자유오
兩世一身形單影隻 嫂常撫汝指吾而言曰 韓氏兩世 惟此而已
양세일신 형단영척 수상무여지오이언왈 한씨양세 유차이이
汝時尤小 當不復記憶 吾時雖能記憶 亦未知其言之悲也 吾年十九 始來京城 其後四年而歸視汝 又四年 吾往河陽省墳墓
여시우소 당불부기억 오시수능기억 역미지기언지비야 오년십구 시래경성 기후사년이귀시여 우사년 오왕하양성분묘
遇汝從嫂喪來葬 又二年 吾佐董丞相於汴州 汝來省吾 止一歲 請歸取其孥 明年丞相薨 吾去汴州 汝不果來 是年
우여종수상래장 우이년 오좌동승상어변주 여래성오 지일세 청귀취기노 명년승상훙 오거변주 여불과래 시년
吾佐戎徐州 使取汝者始行 吾又罷去 汝又不可來 吾念汝從於東 東亦客也 不可以久 圖久遠者 莫如西歸 將成家而致汝
오좌융서주 사취여자시행 오우파거 여우불가래 오념여종어동 동역객야 불가이구 도구원자 막여서귀 장성가이치여
嗚呼 孰謂汝遽去吾而歿乎 吾與汝俱年少 以爲雖暫相別 終當久相與處 故捨汝而旅食京師 以求斗斛之祿 誠知其如此
오호 숙위여거거오이몰호 오여여구년소 이위수잠상별 종당구상여처 고사여이여식경사 이구두곡지록 성지기여차
雖萬乘之公相 吾不以一日輟汝而就也 去年 孟東野往 吾書與汝曰 吾年未四十 而視茫茫 而髮蒼蒼 而齒牙動搖
수만승지공상 오불이일일철여이취야 거년 맹동야왕 오서여여왈 오년미사십 이시망망 이발창창 이치아동요
念諸父與諸兄 皆康强而早世 如吾之衰子 其能久存乎 吾不可去 汝不肯來 恐旦暮死 而汝抱無涯之戚也 孰謂少者歿
념제부여제형 개강강이조세 여오지쇠자 기능구존호 오불가거 여불긍래 공단모사 이여포무애지척야 숙위소자몰
而長者存 强者夭而病者全乎
이장자존 강자요이병자전호
嗚呼 其信然邪 其夢邪 其傳之非其眞也 信也 吾兄之盛德 而夭其嗣乎 汝之純明 而不克蒙其澤乎 少者强者而夭歿
오호 기신연야 기몽야 기전지비기진야 신야 오형지성덕 이요기사호 여지순명 이불극몽기택호 소자강자이요몰
長者衰者而存全乎 未可以爲信也 夢也 傳之非其眞也 東野之書 耿蘭之報 何爲而在吾側也
장자쇠자이존전호 미가이위신야 몽야 전지비기진야 동야지서 경란지보 하위이재오측야
嗚呼 其信然矣 吾兄之盛德 而夭其嗣矣 汝之純明宜業其家者 不克蒙其澤矣 所謂天者誠難測 而神者誠難明矣
오호 기신연의 오형지성덕 이요기사의 여지순명의업기가자 불극몽기택의 소위천자성난측 이신자성난명의
所謂理者不可推 而壽者不可知矣 雖然 吾者今年來 蒼蒼者或化而爲自矣 動搖者或脫而落矣 毛血日益衰 志氣日益微
소위이자불가추 이수자불가지의 수연 오자금년래 창창자혹화이위자의 동요자혹탈이낙의 모혈일익쇠 지기일익미
幾何不從汝而死也 死而有知 其幾何離 其無知 悲不幾時 而不悲者 無窮期矣 汝之子始十歲 吾之子始五歲
기하불종여이사야 사이유지 기기하리 기무지 비불기시 이불비자 무궁기의 여지자시십세 오지자시오세
少而强者不可保 如此孩提者 又可冀其成立耶
소이강자불가보 여차해제자 우가기기성립야
嗚呼哀哉 嗚呼哀哉 汝去年書云 比得軟脚病 往往而劇 吾曰 是疾也 江南之人常常有之 未始以爲憂也 嗚呼
오호애재 오호애재 여거년서운 비득연각병 왕왕이극 오왈 시질야 강남지인상상유지 미시이위우야 오호
其竟以此而殞其生乎 抑別有疾而至斯乎 汝之書 六月十七日也 東野云 汝歿以六月二日 耿蘭之報 無月日 蓋東野之使者
기경이차이운기생호 억별유질이지사호 여지서 육월십칠일야 동야운 여몰이육월이일 경란지보 무월일 개동야지사자
不知問家人而月日 汝耿蘭之報 不知當言月日 東野與吾書 乃問使者 使者妄稱以應之耳 其然乎 其不然乎
부지문가인이월일 여경란지보 부지당언월일 동야여오서 내문사자 사자망칭이응지이 기연호 기불연호
今吾使建中祭汝 弔汝之孤與汝之乳母 彼有食 可守以待終喪 則待終喪 而取以來 如不能守以終喪 則遂取以來
금오사건중제여 조여지고여여지유모 피유식 가수이대종상 칙대종상 이취이래 여불능수이종상 칙수취이래
其餘奴婢 竝令守汝喪 吾力能改葬 終葬汝於先人之兆 然後惟其所願
기여노비 병령수여상 오력능개장 종장여어선인지조 연후유기소원
嗚呼 汝病 吾不知時 汝歿 吾不知日 生不能相養以共居 歿不能撫汝以盡哀 斂不憑其棺 窆不臨其穴 吾行負神明 而使汝夭
오호 여병 오부지시 여몰 오부지일 생불능상양이공거 몰불능무여이진애 렴불빙기관 폄불림기혈 오행부신명 이사여요
不孝付慈 而不得與汝相養以生 相守以死 一在天之涯 一在地之角 生而影不與吾形相依 死而魂不與吾夢相接 吾實爲之
불효부자 이부득여여상양이생 상수이사 일재천지애 일재지지각 생이영불여오형상의 사이혼불여오몽상접 오실위지
其又何尤 彼蒼蒼者天 曷其有極 自今以往 吾其無意於人世矣 當求數頃之田於伊潁之上 以待餘年
기우하우 피창창자천 갈기유극 자금이왕 오기무의어인세의 당구수경지전어이영지상 이대여년
敎吾子與汝子 幸其成 長吾女與汝女 待其家 如此而已 嗚呼 言有窮 而情不可終 汝其知也邪 其不知也邪 嗚呼哀哉 尙饗
교오자여여자 행기성 장오여여여여 대기가 여차이이 오호 언유궁 이정불가종 여기지야사 기부지야사 오호애재 상향
연월일 계부 나 유가 네(십이랑) 상사를 얘기를 들은 지 이레 만에 슬픔을 머금고 정성을 다해 건중(종)을 시켜
제철음식으로 제수를 갖추어 너 십이랑의 영에 고 하노라.
슬프다. 내 나이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성장하면서 미처 의지하는 바를 살피지 못하게 되었으니
오직 형수에게 의지하였다. 중년에 맏형이 남방에서 몰하였는데 나와 네가 모두어렸으니 형수를 따라 하양에
귀장하였다.
그리고 나서 너와 더불어 강남에서 객지생활을 할 때는 외로운 몸끼리 함께 고생했으니
일찍이 하루도 서로 헤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위로 세 형님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에,
선대의 혈통을 잇는 자손으로 손자로 네가 있고 아들로 내가 있을 뿐 이었다.
2대에 걸쳐 각기 한 사람뿐이니 형상도 어렵고 그림자도 외로웠다.
아주머니(형수)께서 언제나 너를 어루만지고 나를 가리켜며 “한씨 집안에는 이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때 너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기억이 없을 것이다.
나는 비록 기억은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그처럼 슬픈 일인 줄은 몰랐다.
내 나이 열아홉에 비로소 장안으로 왔으며 그 4년 후에 돌아가서 너를 보았다.
또 4년에 내가 하양으로 가 성묘를 했을 때, 형수의 시신을 따라와 장사 지내던 너를 만났다.
다시 2년 후, 내가 변주에서 동승상을 보좌할 때 네가 나를 찾아와 그곳에서 1년 머물다가 가서
처자식을 데리고 오겠노라고 청했던 것이다.
다음해에 동승상이 돌아가시고 내가 변주를 떠나게 되어 너는 결국 오지 못했다.
같은 해에 나는 서주에서 융사를 보좌하게 되어 너를 데리고 올 사람을 비로소 가게 했으나
나는 또 관직을 그만두어 너는 또 올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네가 동쪽으로 따라 온다고 해도 동쪽 또한 객지라 오래 머물 수 없으니
항구적인 대책을 도모 하기는 서쪽으로 돌아가서 집안을 이루고 너를 데려 오려 했었다.
슬프다. 네가 갑자기 나를 버리고 죽을 줄 누가 알았으랴.
나와 네가 모두 소년이었을 때
비록 잠시 서로 헤어지더라도 결국에는 마땅히 서로 더불어 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너를 버려두고 장안에서 객지생활을 하면서 얼마 안 되는 봉록을 구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비록 만승의 공상이라 하더라도 나는 하루도 너를 버리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맹동야가 부임할 때 내가 너에게 편지 써 보내기를
“내 나이 40이 되지 않았는데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치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부와 숙부들의 형들이 모두 건강했음에도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생각해 볼 때,
나같이 쇠약한 사람이 어찌 오래 살수 있겠는가. 내가 갈 수 없고 네가 즐겨 오지 않으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어 네가 한 없는 슬픔을 안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누가 젊은이가 죽고 늙은이가 살아남으며 건강한 사람이 요절하고 병든 사람이 무사할 것을 알았겠느냐.
슬프도다. 참말인가. 꿈인가. 죽었다는 기별이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닌가.
참말이라면 우리 형님의 성덕으로 그 후사를 요사하게 하겠는가.
너의 순결함과 총명함으로 그 은혜를 입을 수 없었단 말인가.
젊고 굳센 자가 요사하고, 나이 많고 쇠약한 자가 살아남아서 온전하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꿈인가, 전하는 것이 참말이 아닌가. 동야의 글과 경란의 보가 왜 내 곁에 있는가. 슬프다. 그 진실인가.
내 형의 훌륭한 덕으로도 그 후사를 요절케 했으며 너의 순명으로 마땅히 그 집을 빛나게 할 자가
그 은택을 입을 수 없었다. 이른바, 하늘이란 진실로 측량하기기가 어렵고 신이란 진실로 밝히게 어려운 것이다.
이른바 이치랑 추측할 수 없는 것이며 수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나도 금년부터 희끗희끗하던 머리가 변해 하얗게 되기 시작했고
흔들리던 치아가 혹 떨어져 빠지게 되었다.
체력이 날마다 더욱 쇠약해지고 의지와 원기가 날로 쇠미해지니 너를 따라 죽지 않을 날이 얼마나 되지 않겠느냐.
죽어서 지각이 있다면 그 헤어짐이 얼마나 되겠으며 죽어 지각이 없다고 하면 슬픔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슬픔을 느끼지 않을 것이 무궁하게 될 것이다.
네 아들이 겨우 열 살이고 내 아들이 다섯 살인데 나이가 어리고 튼튼한 사람도 목숨을 보존할 수 없으니
이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아 슬프도다. 슬프도다. 네가 작년에 편지하기를 “근래에 각기병에 걸려 가끔가다 심하다 했다.”
나는 말하길 “이 병은 강남에 사는 사람이라면 늘 걸리는 병이다.”하고 처음에는 그것을 근심거리로 여기지 않았다.
아 슬프도다. 마침내 이것으로 인하여 너는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아니면 다른 질병이 있어 여기에 이르게 되었느냐.
네가 보낸 편지에 6월 17일에 쓴 것으로 되었는데 맹교의 편지에는 6월 2일에 네가 죽었다고 하였고
경란의 보고서에는 날짜의 기술이 없었다.
아마도 맹교의 하인은 집안 식구들에게 죽은 날짜를 물어 보아야 하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경란의 보고서에는 마땅히 날짜를 언급해야 하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맹교가 나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 하인에게 물었더니 하인이 함부로 말함으로 써 그것에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
이제 내가 건중에게 너를 제사 지내게 하고 너의 아들과 너의 유모를 조문하게 하였다.
그들에게 식량이 있어 빈소를 지키며 상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데려 올 것이고
만일 상기를 마칠 때까지 지킬수 없다면 즉시 데리고 오되 나머지 노비들은 모두 너의 상기를 지키게 할 것이다.
나의 힘으로 개장할 수 잇다면 끝내 너를 선영에 장사 지낼 것이다.
그렇게 한 후에야 그 원하는 바를 다하게 될 것이다.
아 슬프도다. 네가 병든 것에 대해 나는 그 때를 알지 못하였고 네가 죽은 것도 내가 그날짜를 알지 못하는구나.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봉양하며 함께 살지 못했고 죽어서도 너의 시신을 어루만지면서 슬픔을 다하지 못하는구나.
염을 할 때도 그 관에 기대지 못하고 하관을 할 때도 너의 무덤에 가보지 못했구나.
나의 행실이 천지신명께 죄를 얻어 너를 요절하게 만들었고 내가 또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자애롭지 못해서
너와 더불어 서로 봉양하며 살아가면서 서로를 지키다가 죽지도 못했구나.
한 사람은 하늘 끝에 있고 한 사람은 땅 끝에 있으니 살아서 그대의 그림자가 나의 몸과 더불어 서로 의지하지 못하고
죽어서도 혼이 나의 꿈과 더불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구나. 내가 진실로 그렇게 했으니 그 또한 무엇을 탓 하리오.
푸르고 푸른 하늘이시여 어떻게 그 끝이 있으리오. 지금부터 나는 세상살이에 의욕이 없을 것 같다.
마땅히 몇 이랑의 밭을 이수와 영수 근처에 구하여 여생을 맞이하겠다.
내 아들과 네 아들을 가르쳐 그들이 성장하기를 바랄 것이고 내 딸과 네 딸을 길러서 그들이 시집가기를 기다리겠다.
다만 이와 같을 뿐이다. 슬프다. 말은 다함이 있을 지라도 정은 끝이 없구나. 너는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아 슬프다. 흠양할 지어다.
'詩 > 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秋月夜(추월야) - 추향(秋香) (0) | 2020.11.27 |
---|---|
贈盧御使(증노어사) - 蘆兒(노아) (0) | 2020.11.27 |
紅友 - 鳳雛 - (홍우 봉추) (0) | 2020.11.11 |
山寺月夜聞子規(산사월야문자규) (0) | 2020.10.30 |
餞春(봄을 보냄) (0) | 2020.08.27 |